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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Aug 19. 2023

순천, romantico

연주 여행기

 체크아웃 시간까지 최대한 빈둥거리다가 나왔다. 배고프다. 어제 공연 마치고 만난 사진예술가님께 추천받은 집에 가볼까 한다. 차로 10여분 거리에 <옥천 귀뚜라미> 있다. 로컬이 말해준 집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동파육 덮밥을 먹고 싶은데  팔리진 않았겠지. 한산한 거리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귀뚜라미다. 15분가량 기다려 들어갔다. 다행히 주문에 성공했다. 기다려 먹은 동파육은 동파육 맛이었고, 배가 불렀고, 조금은 슬펐다.      


맛있고 허무하다.

      

 조금 걷자. 땀이 자박자박 오르도록 덥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겠지만 최대한 로컬처럼 걸으려 노력하며 주위를 구경한다. 밥을 좀 남겼는데도 불편하도록 배부르다. 왜 0.5인분은 팔지 않을까. 엷게 아쉬움을 느낄 정도의 양이면 딱 좋겠는데. 문득 romantico라는 찻집이 스친다. 그대로 지나쳐 가게가 없는 동네 쪽으로 걷는다. 로만티끄. 예전에 그런 노래가 있지 않았나. 혼자 몇 소절 흥얼거리다 유튜브를 켜 귓속에 넣는다.      


오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허락했지.      


 어렸을 땐 가사가 들렸는데 음악가가 되어버린 지금은 반주가 들린다. 멜로디와 전혀 다른 피아노 진행, 눈물이 핑 도는 베이스, 이질적으로 반짝이는 텐션. 순간 확 울적해진다. 세상에는 천재도 많고 능력 있는 사람도 많고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도 많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유튜브를 하면 대박 날 거라는 사람도 있었고, 목소리가 괜찮으니 노래도 해보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성공하실 거라는 말은 더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건 저 멀리 반짝이는 별 같달까. 나는 천공의 수많은 별 중 단 하나도 끌어와 품지 못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별의 존재를 몰랐으면 나았을까. 평생 노력해서 별을 보는 망원경이나 간신히 품은 나는 이럴 때 좀 슬프다.      


지금 우리는 춤을 추고 있어 비밀스러운 몸짓과 노래로.      


 거리는 진공이다. 새소리조차 없다. 그 덕에 노래가 더욱 투명하게 들린다. 문득 쓰고 싶어진다. 별같이 반짝이게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멈추고 싶다. 서둘러 차에 들러 노트북을 들고 카페 romantico에 들어간다. 조금 고민하다 옥천라떼를 주문한다. 사람과 대화하니 조금은 현실로 돌아온 것 같다. 자리에 앉아 서둘러 쓴다. 문득 지독한 피로를 느낀다.      


너의 목소리에 녹아내리네, 이 순간을 멈추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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