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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Oct 16. 2023

거리공연자의 마음 단련

더욱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오늘은 섭외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역시나 주말에 몰렸다. 덕분에 아주 아슬아슬한 일정이 되었다. 어떤 날은 11시에 광명동굴, 1시에 강남 취창업센터에 갔다가 바로 3시에 도봉구 도깨비시장, 그리고 바로 8시에 보령 수영성에서 공연이 있다. 행여 이동에 차질이 생길까 불안하다. 메일을 보니 예전에 합격한 지역축제 일정표가 왔다. 그러나 합격한 날과 오늘, 그 잠깐 사이에 공연이 생겨 어떻게 시간표를 짜도 그 시간에는 갈 수 없다. 결국 지역축제를 포기했다. 아쉽고 속상하다. 다른 날은 판판 노는데. 눈앞에서 보물을 놓친 기분이다.

 섭외가 겹쳐서 고사하는 것도 슬프지만, 주말인데도 일정이 없는 날이 있으면 불안하다. 그게 가을이라면 평일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날은 백수가 된 기분이랄까.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허연 하루가 겁난다. 혹시 새치처럼 드문드문 하얀 날들이 많아지다가 백수(白首)가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러다 굶어 죽는 게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은 어찌 그리 빠른지. 나는 벌써 노인이 된 기분이다. 그러니까 그러지 않으려면 비어 있는 날에 뭐라도 해야 한다. 나를 홍보하고 계발해야 한다. 새로운 콘셉트도 만들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SNS를 켠다. 다른 공연팀의 피드가 올라와 있다. 다들 여기저기에서 많이들 공연한다. 나도 서류를 썼지만 불합격된 공연, 알지도 못했던 공연, 나는 작년에 비 때문에 취소됐던 공연을 이 팀은 멋지게 하고 있다. 나는 왜 올해는 안 불러주지. 오늘 종일 공연이 없었다. 순간 상대적 박탈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 왜 나는 안 불러주는지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인다.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시행하는 예술인 심리상담이 있다. 격년으로 받을 수 있는데, 그 비싼 상담 비용이 전액 무료이다. 심리검사 배터리(심리검사 모음)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미 입소문도 났고 인기도 좋아 금방 매진된다. 작년에는 놓쳤는데, 이번에는 잽싸게 신청했다. 공짜는 좋은 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상담받으러 간다. 선생님과 소소한 근황이나, 거기에서 느낀 것들을 나눈다. 그러다 의외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불안’의 이슈를 갖고 있었다. 매일 불안해하면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섭외가 들어오면 동선이 제멋대로여서 지칠 것 같아도 일단 잡았다. 일중독처럼 쉬지 않고 일했고, 쉬는 때에도 자신을 채찍질했다. ‘공연자로서의 나’에 잠식되어, ‘본질로서의 나’를 망각한 것이다. 게다가 프리랜서 공연자의 특성상, 위와 같은 이유로 점점 더 조바심과 불안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게 일에서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확장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나만의 의식이나 활동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뭐든지 마음을 너무 쏟으면 안 되는 걸까. 스스로를 먼저 챙겨야 했다. 일단 쉬는 날에 운동을 시작했다. 6:1 필라테스를 하거나 하다못해 아침에 산에 갔다. 몸이 힘드니 쓸데없는 생각들이 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원래는 파워 집순이지만, 집에만 있으면 울적해지니 동네 도서관에 갔다. 자기계발서가 눈에 먼저 들어왔지만, 소설이나 인문학 계열 글을 먼저 빌려 읽었다. 원래는 집에서 연습했는데, 돈이 좀 아깝지만 근처 연습실까지 가서 연습했다. 항상 일기에는 속상한 일들 위주로 썼는데, 자신을 격려하는 글이나 공연하면서 행복했던 일들을 위주로 썼다. 마음이 힘들 때면 일기를 꺼내 읽었다.      


 물론 아직은 섭외가 들어오면 좀 무리해서라도 열심히 잡지만, 전처럼 무리하지는 않으려 한다. 만일 같은 시간이라 출연을 고사해야 할 때도 마음을 덜 쓰려 노력한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 단련이 앞으로의 음악 인생에도,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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