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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Nov 04. 2024

겨울날의 거리공연자

무기력과 비관 이겨내기

 당연한 얘기지만 겨울에는 거리공연이 현저히 줄어든다. 지자체에서 하는 거리공연은 대부분 11월 즈음에 끝나 버리고, 간간이 크리스마스 공연이나 설날 공연 등이 있다. 4월 즈음이 되면 전국에서 봄꽃축제를 하며 다시 공연이 시작된다. 거리공연자는 12월부터 3월까지는 거의 수입이 없다는 말이다. 1년의 사분의 일 정도 반 실업 상태다. 겨울은 춥지만 돈 벌지 못하는 겨울은 더 춥다. 그 기간 거리공연자는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거나, 안 벌고 안 쓰기를 택한다. 나는 후자다.

 해는 화장실에서 떠서 내 방에서 진다. 하루에 가장 멀리 걷는 거리도 역시 내 방에서 화장실까지다. 한껏 늦잠을 잔다. 부모님이 출근하시면 그나마 내 세상이다. 빈둥거리고 휴대폰도 보고 힘껏 우울해하다가 지치면 낮잠도 잔다. 저녁 일곱 시 즈음 부모님이 오시면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춘다. 아직 잘 때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지만 무엇을 하든 시원하지가 않다. 휴대폰을 보는 것도 괜히 눈치 보인다. 함께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 외에는 무어라도 하는 양 컴퓨터를 뒤적거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다. 부모님께서 주무시면 그제야 내 방문을 온전히 닫을 수 있다. 그때부터 새벽까지는 또 나만의 시간이다. 낮에 다 못했던 울적함과 불안을 안고 뒤척대다 잠든다.

 이 겨울을 어떻게 좀 생산적으로 보낼지 계획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거의 하지 못했던 목록을 적는다. 작곡하기, 글쓰기, 영어 공부, 다른 악기 시도하기. 아주 줄줄이 나온다. 그러나 채근 없는 목표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오늘도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과 함께 한숨짓는다. 차라리 겨울잠이라도 자고 봄부터는 덜 자게 된다면 생산적일까. 나는 왜 곰이나 개구리가 아닐까.

 물론 계획이 성공할 때도 있다. 2017년에는 3월에 혼자 보름 정도 한복을 입고 동유럽 버스킹 여행을 다녀왔다. 프리랜서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몇 년 전에는 기타를 배우겠다고 홍대에도 열심히 다녔다. 영어책을 보고 하루에 하나씩 다양한 주제로 글도 썼다. 하지만 여행 빼고는 채근이 없으니 용두사미. 이번 겨울은 더욱 춥고, 집 밖에도 나가기 싫다.

 아무리 귀찮아도 겨울에 꼭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작년의 포트폴리오와 홍보영상을 재정비하는 일이다. 작년의 기록을 방청소하듯 다 꺼내놓고 분류한다. 뭐가 제일 있어 보이고 나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해놓지 않으면 1년이 번거롭다. 나름의 씨 고르기 작업인 셈이다. 그리고 국가지원사업이나 지자체 지원 사업, 거리공연 공모 등도 잘 확인해야 한다. 일정과 서식에 잘 맞추어 서류를 작성해야 오디션도 보고 합격도 하고 1년을 먹고 산다. 열심히 씨를 심어도 나오지 않는 것도 많지만 일단 심어 보기는 해야 한다. 이게 또 대단히 귀찮고 시간도 많이 든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합격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선발되기를 기다리는 삶은 무기력하다. 그래도 내부 섭외가 아니라 공고가 뜨는 게 어디야. 나는 서류 속 세상 가장 발랄한 해금연주자를 꾸며내어 꾸역꾸역 쓴다.

 겨울의 거리공연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동료 거리공연자와 가장 통화를 많이 하는 때도 이때쯤이다. 이번에도 공연계 예산이 줄었다는데, 나 이번 달에는 내내 공연이 없어. 이대로 영영 섭외가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뭔가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올해도 거리공연자로 살아갈 수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늦은 가을 마지막 공연을 마치며 비장하게 인사한다. 이번 겨울도 무사히 살아남아서, 내년 봄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해마다 그만두는 동료는 늘어나고, 새로 시작하는 동료는 더욱 늘어난다. 매년 새롭고 실력 있는 사람들로 거리공연계는 치열하다. 하지만 나는 올해도 음악을 하며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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