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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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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Dec 27. 2022

송이의 시간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 힘들게 일한 날에는 더 그렇다.

  어제는 새벽에 송이가 '꺄앙~'하고 소리를 질러서 잠에서 깼다. 놀라서 나가보니 송이가 얼굴에 오줌범벅을 한 채 거실에 털푸덕 앉아 있었다.

  얼른 송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송이를 씻겼다. 수건에 감싸서 안았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까아악' 시조새 같은 소리를 냈다.


  '오늘은 송이가 또 무슨 짓을 해놓았을까?'

걱정이 밀려와서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내 방문 앞에서 오줌냄새가 나고 사료통을 엎어서 온통 사료가 흩어진 거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송이는 어디 있지?'

  송이를 찾아보니 재민이 방에서 부직포 가방에 머리를 집어넣고 누워 있다.

  '저건 또 어디서 꺼낸걸까?'

   움직이지 않는 송이를 보면 항상 긴장이 된다. 자세히 보니 송이 배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다.

   쌔액쌕 코도 곤다. 휴.


  바닥에 흩어진 사료를 치우고 걸레질을 했다. 옆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가방을 조금씩 벗겼다. 잠에서 깨어난 송이는 한번씩 움찔거리며 "꺄아앙"하고 비명을 질렀다. 통증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다리를 주무르고 온몸을 손으로 쓸어줬다.

  

 사료를 다 쏟았으니 배도 고플 터였다. 깨끗이 씻은 그릇에 물과 사료를 담아 송이를 데려갔다. 송이는 얼굴을 박고 사료를 먹었는데 금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사료그릇을 찾아 헤맸다. 다리도 자꾸 풀려서 주저앉았다.

  나는 송이 얼굴을 사료그릇 위로, 물그릇 위로 슬쩍슬쩍 밀어주었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배를 채우지도 못하겠구나.'하고 생각했다.


  퇴근할 때 1학년 예은이를 만나서 지하철역 앞 사거리까지 같이 걸었다. 우리집 강아지가 치매라고 했더니 예은이가 치매 관련 책의 리뷰를 읽었다고 하면서 말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굉장히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은 거래요. 치매란 게요."


  송이야, 그런 거야?


나는 가끔 송이가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그러다가 아니, 말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몰랐던 송이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해 듣는다면 몹시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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