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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Dec 28. 2022

송이, 첫만남

  어릴 때, 나는 개를 아주 많이 무서워했다고 한다.

  어른이 된 후로도 조금은 개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골목길에서 산책하던 개들은 나를 보고 왕왕 짖어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봤자 사실은 겁내고 있다는 걸 개들이 눈치를 챘던 것 같다.    

 

  "멀찍이 개가 보이기만 해도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 버리는 거지. 아무리 엄마가 있으니 괜찮다고 해도.“      

  엄마는 얘기했다. 그리고 꼭 이 말을 덧붙였다. 

  "방금 씻겨서 갈아 입힌 옷을 그렇게 더렵혀 놓으니 어우, 얼마나 화가 나?" 

  나는 걸음도 못 뗄 정도로 겁에 질려 땅바닥을 구르며 우는 어린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일거리를 만들어 줬다고 엄마한테 얻어맞았을 내가 가엾고 딱했다. 

  자식이 공포에 질려 울며 자지러져도 그 어린 것의 마음을 살피고 다독이기보다 당장 늘어난 빨랫감에 화가 났던 젊은 엄마도 불쌍했다.     

 

  내가 송이를 데려오기로 한 건 파주출판단지의 한 출판사에 다닐 때였다. 6시 반에 퇴근을 하고 버스정류장에 나오면 이미 사람을 가득 실은 버스가 멈추지도 않고 지나갔다. 우리 출판사는 출판단지 초입에 있어서 더했다. 

  나는 서울과는 반대 방향으로 두세 정거장을 거슬러 걸어가서 버스를 타곤 했다. 그렇게 해도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은 극히 드물었다. 면접을 보러 갔던 평일 낮시간에는 합정에서 출판단지까지 25분 걸렸는데 퇴근길은 1시간 10분이 걸렸다. 

  합정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8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은 외롭다고 했다. 그러니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강아지가 있으면 엄마가 조금 늦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강아지를 입양해야겠다고 하니 Y가 말했다. 

  “언니, J 언니네 강아지 입양 보낼 거라던데, 그 언니한테 물어봐.” 

  J 언니에게 연락했더니 언니는 “우리 강아지, 다섯 살인데 괜찮아?”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언니는 산책줄과 물통, 사료는 쓰던 걸 줄테니 이동장을 사서 오라고 했다.     


  9월의 어느 일요일, 아들과 나는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쯤 걸려서 J 언니가 사는 동네로 갔다. 

  송이는 자기를 남에게 보내는 걸 눈치채고 겁에 질려서 J 언니 남편의 옷에 오줌을 쌌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온 J 언니 남편과 우리는 고깃집에서 갈비를 먹었다. 송이는 문 앞에 줄로 묶어둔 채였다. 

  J 언니는 사실 송이가 다섯 살이 아니라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일 거라고 했다.      


  송이는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낑낑댔다.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이동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송이는 계속 짖었고 갈비와 함께 소주를 꽤 마신 나는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는 동안 승객 중 누구 한 사람 짜증을 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죄송한 일이다.     


  지하철 안에서는 송이가 조용했다. 지하철 역을 나와 이동장에서 송이를 꺼내 산책줄을 맸다. J 언니도, J 언니 남편도 산책줄 매는 법을 모른다고 했고 살펴봐도 어떻게 매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대충 몸통에 둘러서 맸다. 

  송이는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며 작은 궁둥이를 실룩거리면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까지 송이가 산책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오자 송이는 탐색하듯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송이를 데려오기로 하고 가구 배치를 조금 바꾸던 중이었는데 마무리가 다 되지 않아 집안이 너저분했다. 넓은 아파트에 살던 아이를 좁고 어두운 집에 데려와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료를 그릇에 부어주니 송이가 코를 훌쩍이며 먹었다. 송이는 우는 것 같았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왜 울어?”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송이가 앞발을 들어 내 어깨에 올렸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송이의 작은 어깨에 내 손을 올렸다.  

    

  그게 안아달라는 말이었다는 것은 다음날, 출근하고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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