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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Dec 29. 2022

이제야 가족

송이는 이렇게 '우리'가 되었다

  송이가 집에 온 날 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새벽 2시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뭔가가 팔을 툭 건드리는 바람에 놀라서 깼다. 송이인가 생각했지만, 옆에서 자던 재민이가 뒤척이다 그런 거였다.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이 지났을 뿐이었고 송이는 여전히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톡톡톡 발소리가 났다. 


  ‘이거 참, 곤란한걸’


 하고 생각했다. 털이 북슬북슬하고 뜨끈하면서도 말랑한 이 생명체를 만져야 할까? 지금껏 개를 무서워하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청소를 하면서, 낮에 J 언니 남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퇴근해서 오면 얘가 막 반갑다고 달려들거든. 그럼 옷이 발톱에 긁혀서 상하잖아. 그럴 때는 그냥 뻥 차버려.” 내가 놀라자, 그는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시추는 중국 황실에서 키우던 개라고도 했다. “황제는 와이프가 많잖아. 후궁들이 황제를 기다리면서 외로워서 키우던 개가 바로 시추야.” 나는 애가 듣는데 저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 싶어 못마땅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송이는 4시경에야 잠이 들었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송이의 배를 보며 ‘저 작은 아이를 발로 찼단 말이지?’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출근을 하고도 종일 송이 생각을 했다. 낯선 집에 혼자 남겨졌으니 무서울 것 같았다. 시추는 잠이 많은 견종이라는 것과 재민이가 수업을 일찍 마친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러 송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알아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의자에 앉아 송이를 무릎에 앉힌 채 순서를 기다리는데 한 강아지가 송이한테 관심을 보이며 내 무릎에 앞발을 올렸다. 내가 놀라서 “으, 얘 좀 데려가 주세요.”하니 의사는 “아니, 개를 무서워하면서 얘는 어쩌자고 데려오셨어요?”했다. 나는 머쓱해져서 “우리 집 애는 좀 다를 거라 생각했죠.”하고 대꾸하고는 송이를 끌어안았다. 


  “피부병이 심한데요?”


  의사가 말했다. 송이가 몸 여기저기를 긁어대는 게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긴 했다. Y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J 언니네서 송이를 입양 보내기로 하고 ‘쟤를 어쩌지?’ 뭐 그런 말을 했다나봐. 그 뒤로 송이가 눈치를 본대.”


아, 송이는 피부병 때문에 우리집에 오게 된 거였구나. 



  송이 나이를 다섯, 여섯, 일곱 살이라고 들었다고 하니 의사가 송이의 이빨을 살피고는 말했다. 

  “스켈링을 한 적이 없다면 일곱 살까진 아니고 아마 다섯 살이나 여섯 살 정도 됐을 거예요.”

  그러면서 피부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니 주사를 맞히는 게 좋겠다고 했다. 송이는 등에 주사를 맞으면서도 잠깐 ‘낑’하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피부병 걸린 강아지와 살게 되다니. 속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병원에서 배운 대로 산책줄을 매었더니 송이는 앞장서서 총총 걸었다. 전봇대에 다가가 냄새를 맡고 오줌도 눴다. 송이가 천천히 걷는 나를 뒤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으응, 그래. 우리 애기.”하며 송이를 향해 웃었다. 


  “우리 집에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오다니 나는 꿈꾸는 것 같아, 엄마.”


  재민이가 말했다. 확실히 송이는 누가 봐도 예쁘게 생겼다. 무슨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송이 엄마는 어떻게 생겼는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피부병 때문에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송이에게 먹이는 일은 참 힘들었다. 송이는 쓰으 소리를 내며 가루약이 든 캡슐을 뱉어냈다. 겨우 입에 넣으면 어금니로 물고 버텼다. 한번은 약을 먹이려다 엄지손가락이 물리기도 했다. 


  송이는 대체로 순하고 얌전했지만 가끔 손을 물려고 하거나 으르렁 소리를 내면 조금 무서웠다. 처음 집에 온 날 “여기가 화장실이야. 여기에 쉬해.”하고 알려줬는데 두 번 정도 주방에 오줌을 누고는 바로 화장실에서 볼일을 해결했다. 재민이는 송이가 너무 똑똑하다며 자기 동생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퇴근하면 송이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송이에게 보내는 환호와 칭찬에 덩달아 으쓱했다. 처음 데려온 날의 걱정과는 달리 송이를 만지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계속 만지고 싶어서 재민이와 송이 쟁탈전을 벌였다. 

  조그만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북슬북슬한 털에 손가락을 넣고 축축한 배를 어루만졌다. 송이는 자꾸만 배를 만지라고 벌러덩 누웠다. 


  송이를 데려오고 일주일이 지났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고 송이를 만지는데 이상하게 열감이 느껴졌다. 딱히 뜨겁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송이가 조금 무겁게 움직이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토요일에 재민이와 함께 송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자궁축농증인데요?”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네?” 


“여기 보이시죠? 원래는 여기가 얇게 보여야 하는데 부풀어 있죠? 이게 농이 차서 그런 거예요.”


  의사는 송이가 출산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J 언니한테 들은 대로 한 번 출산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새끼를 한 마리 낳았는데 송이가 너무 힘들어했다고 했었다. (그 아기는 어디 갔는지 차마 묻지 못했다.) 의사는 강아지가 상상임신을 하면 자궁이 부풀었다 줄었다 하면서 그 안에 농이 찬다고 했다. 보통은 초기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증상이 심해져서 강아지가 걷지 못하게 되어서야 병원에 데려온다고. 거대한 솜방망이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 피부병에 자궁축농증이라고?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을 하고 2박 3일 입원하면 된다고. 어차피 중성화수술을 해야 하니 차라리 지금 자궁을 제거하는 편이 건강에도 더 좋다고 했다. 수술비 70만원은 당시 내 형편에는 큰 돈이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이가 살려고 나에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야, 한숨 자고 나면 오빠랑 엄마가 다시 올게.”


  수술비를 카드로 결제하고 병원을 나왔다. 송이 눈이 더 커다래졌다. 재민이와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점심을 때웠다. 재민이는 만약 송이가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했다. 


  2시간 후 병원으로 다시 갔다. 의사는 송이가 막 마취에서 깨어났다고 알려줬다. 식기세척기처럼 생긴 회복실 안에 배에 붕대를 감은 송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문을 여니 송이가 힘겹게 일어나 걸어왔다. 송이의 얼굴이 꼬질꼬질하고 초췌했다. 

“침을 많이 흘렸어요.” 

의사가 말했다. 송이가 내 가슴에 제 머리를 가져다 댔다. 안아도 된다고 해서 송이를 품에 안았다. 어쩐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수술은 잘됐다고, 모레 와서 데려가면 된다고 의사가 말했다.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송이는 이때부터 재민이와 나를 전적으로 의지했다. 이제야 우리가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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