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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Jan 19. 2023

엄마의 장례식(1)

송이는 분리불안을 얻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토요일이었다. 늦잠을 잘 생각이었는데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웬일인지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소시지를 굽고 사과를 깎고 계란후라이를 만들어서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재민이에게 한 접시를 주고 내 몫으로 하나를 더 만들었다. 이상하게 입맛이 없었다. 커피만 홀짝이고는 청소나 하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였다.


  전날 저녁에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택배를 보냈다고 했기 때문에 아빠가 그일로 전화를 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고춧가루를 보냈다고 했다.

  “너네 내일 쉬잖아. 그래서 고춧가루 사온 걸 지퍼백에 담아서 보냈어. 손이 떨려서 겨우 포장했다. 아까 아빠가 우체국에 가서 부쳤으니까 내일 도착할거야. 유리병에 넣어놓고 잘 먹어. 박스에 공간이 남아서 고구마도 좀 넣었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굳이 사서 보내줄 필요가 있나 생각했지만 지난 이틀간 집에 전화를 하면 아빠가 받으셔서 “엄마가 지금 전화를 못 받아. 몸이 안 좋아.”라고 하셨던 터라 힘없이 떨리는 엄마 목소리가 반가웠다.  

  엄마는 신장 질환으로 추석무렵부터 주기적으로 혈액투석을 받고 있었고, 다음날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엄마 내일 병원 가겠네? 힘들겠네. 잘 다녀와.” 내가 말하자 “아녀. 괜찮아. 아빠랑 다녀올거야.”하며 엄마가 말했다.


 “자두야, 건강 잘 챙겨.”


  그 말이 엄마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우체국 택배가 오늘 도착할거라느니 하는 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빠는 상상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심정지가 와서 전북대병원으로 옮겼고 소생실에 들어갔는데 가망이 없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화가 났다.  

  ‘아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전화를 끊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집에 놀러 온다던 동생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어, 언니. 금방 준비하고 갈게.”하고 말했다. “아니, 우리 전주에 가야 해.” 아빠의 말을 전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동생은 흐느꼈다.  

  샤워를 하기 위해 물을 틀어놓고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재민이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비운 접시를 조용히 내놓았을 뿐.

  아빠한테 다시 전화를 받았을 때는 머리카락을 다 말리고 짐을 싸기 시작했을 때였다.  

  “11시 56분, 임종하셨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시간까지 정확히 알려주는 아빠가 어쩐지 원망스러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전주에 가야 한다고, 얼른 씻고 준비하자고 하니 재민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에게 제부 차로 우리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토요일 오후라 기차표나 버스표도 구하기 어려울 테고 운좋게 표를 구한다고 해도 송이를 데리고 전주에 내려가기엔 마음이 힘들었다.  

  예상대로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3시간 만에 휴게소에 도착했다. 재민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했다. 내가 통화하는 걸 다 들었겠지. 말하기 전에 다 알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송이를 안고 있어서 동생이 재민이의 등을 두드려 줬다.  

  동생 가족이 식사를 좀 해야겠다고 해서 재민이도 같이 보내고 송이와 둘만 남았다.


  '오늘 안에 전주에 도착할 수 있을까?'


  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시원하게 오줌을 누고는 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걸었다. 처참한 내 표정보다 송이의 미모가 더 눈에 띄었는지 사람들이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아휴, 예뻐라. 안녕?”

  “아이고, 너도 어디 가냐?”

  송이에게 말을 거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강아지 몇 개월이예요?”

  “얘 시추 맞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낯선 사람들의 스스럼없음이 몹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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