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송이,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송이와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멈춰서서 묻곤 했다.
"아이고, 예뻐라. 애기 몇 개월이에요?"
송이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나는 "다섯 살 아니면 여섯 살이에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어머나, 애기가 아니구나." 하며 동안이라느니, 참 예쁘다느니 하고는 갈 길을 갔다. 나는 '다음에는 그냥 다섯 살이라고 해야지.'하고 마음먹지만 누군가 송이 나이를 물으면 똑같이 대답했고 그것은 송이가 여덟 살 또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됐다. 송이가 아홉 살이거나 열 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나는 송이 나이를 아홉 살이라고 콕 집어서 말했다. 왜냐하면 강아지가 열 살이 되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거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개의 나이는 사람의 7배라던가, 8배라던가?
송이가 열 살을 넘겼을 때에도 여전히 몇 개월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물론 밝은 햇살 아래에서는 "나이 좀 있어 보이는데?"라는 사람도 있었다. 조명발이 중요하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송이가 열한 살이거나 열두 살이 되던 새해 첫날, 혼자서 해돋이를 보러 갔다. 송이와 재민이는 한 베개에서 쌕쌕 자고 있었고 나는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10분 조금 넘게 걸려서 개화산역에 내려 등산복 차림의 남녀를 따라갔다. 사람이 거의 없는 어두운 산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꾹꾹 밟으며 올랐다. 앞서 가던 남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이거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하고 생각했을 때 웬 남자가 나타나서 말을 붙였다.
“제가 산에 다닌지 20년 됐는데 말입니다. 예? 하, 이렇게 빠른 분은 처음 봤습니다. 다람쥐 같이 빠르시네요. 예?”
말끝마다 ‘예?’를 붙이는 게 버릇인 듯한 남자를 따돌리느라 걸음을 더 빨리했다. 쿵짝쿵짝 음악소리가 흐르는 해맞이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밀려왔지만 해가 뜨면 금세 따뜻해질 것 같았다. 국회의원인지 구의원인지 하는 사람들의 새해인사와 덕담을 듣고 기다리니 어느새 새해의 첫 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두둥실 떠올랐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내지르는 탄성에 절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리 송이 피부병 낫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들 건강하게 해달라고도 했다. 어쩐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해 10월 마지막 날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새해 첫날의 기도가 떠올랐다.
아, 나는 송이 오래 살게 해달라고만 하고 우리 엄마, 오래 살게 해달라고는 안 했구나. 엄마는 그대로 우리 곁에 계실 거라고만 생각했구나.
죄책감이 오래오래 나를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