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의 비밀
경험이 쌓여도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
방학이라 송이를 더 오래 지켜보다 보니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료 그릇이 엎어져 있는 건 사료 그릇을 찾느라 송이가 머리로 밀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송이가 균형을 잃고 사료 그릇 위로 넘어져서 그랬다는 것과 사료 그릇이 엎어지지 않았어도 사료가 바닥에 흩어져 있는 건 송이가 얼굴을 박고 사료를 먹다가 흘리는 것도 있지만 송이 입에서 씹히지 못한 채 도로 흘러나오는 것도 많다는 것, 송이가 울음 소리를 내거나 비명을 지르는 게 딱히 몸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것 등이다.
오늘 새벽에는 송이가 울음소리를 내서 잠에서 깼다. 재민이 방에 갔더니 잠에서 깬 재민이가 송이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토닥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우는 소리가 나서.”
“그야 송이가 울었으니까.”
특별히 불편한 게 있었던 건 아닌 듯, 송이는 금세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군 전역 후 일주일에 3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민이는 요즘 송이 때문에 잠을 설쳐서 스트레스성 위염이 생겨 약을 먹고 있다.
재민이가 출근한 후, 노트북을 가지고 재민이 방으로 건너왔다. 오늘 중 처리할 일이 많았다. 공문을 확인하고 품의서를 작성하는 중에 송이가 깨어나 담요에서 빠져 나왔다. 그런데 똑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인 채 앞다리를 이용해서 방문 쪽으로 이동했다. 뒷다리는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곧게 편 채 질질 끌고 있었다.
요즘 들어 송이가 뒷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시간도 길어졌다고 생각하며 모니터와 송이를 번갈아 보고 있는데 쭈그려 앉은 송이 다리 사이로 노란 오줌이 흘러나왔다.
나는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준비해둔 마른걸레로 부리나케 닦아냈지만, 송이의 엉덩이와 뒷다리는 이미 노랗게 젖어 있었다. 송이는 몸을 일으키다가 옆으로 털푸덕 쓰러지더니 앞다리를 버르적거렸다.
사료 그릇, 물그릇을 채운 뒤 송이를 데려갔다. 웅크리고 앉아서 사료를 먹는 걸 보고 설거지를 했다. 잠시 후, 도자기로 된 송이 그릇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송이가 뱅글뱅글 돌며 엉덩이로 그릇들을 밀고 있었다. 바닥에 똥도 두 덩이 떨어져 있었다. 휴지로 똥을 집어내고 바닥을 닦았다. 다시 설거지를 하려는데 배변이 끝난 게 아닌지 송이가 엉덩이에 힘을 준 채 빙빙 돌았다. 엉덩이를 위로 높이 올린 채 돌다가 몸이 바닥으로 패대기쳐지자 앞다리로 엉거주춤 일어나 엉덩이는 바닥에 붙인 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배변이 힘든 것 같았다.
‘다리를 영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가뜩이나 다리도 불편한 애가……’
8년 전, 송이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싶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처음엔 걸을 때 뒷다리가 미끄러지는 것 같아서 바닥이 미끄러운가 했는데 다시 보면 잘 걷고, 괜찮은가 하고 보면 다리 한쪽을 들고 다녔다.
그즈음 송이는 하이마트 앞을 지나면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듯 멈춰서 버텼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동물병원이 있다는 걸 눈치챘던 거다. 미안했지만 그대로 둘 수는 없었으므로 안고 병원으로 달렸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우려했던 대로 슬개골 탈구였다. 슬개골이 빠졌다 다시 끼워졌다 하면서 염증이 생겼다고. 증상이 반복되면 슬개골을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 대퇴골부가 없네요, 얘가.”
의사가 놀라며 말했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왼쪽 뒷다리와 엉덩이가 맞닿는 곳, 하얗게 뼈가 보여야 할 곳이 비어 있었다.
“하, 이거 아주 큰 수술이었을텐데……”
그래서 송이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했던 거로군. 송이는 대체 어떤 일을 겪어온 걸까? 의사가 몰랐냐고 물어서 고개만 저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슬개골 탈구 때문에 다리가 아픈 송이, 대퇴골이 없는 송이.
우선 재민이 침대부터 없애기로 했다. 침대 옆에 계단도 놓아주고 작은 의자도 놓아줬지만 송이는 본체만체하고 침대를 뛰어서 오르내렸다. 송이가 아프다는 말에 재민이는 군소리 없이 침대를 없애는 데 동의했다.
지금까지 침대가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이제는 세월 탓에 송이는 다리를 질질 끌며 다닌다. 오늘은 송이를 세 번 씻겼다. 처음엔 물로만 씻겼지만 얼굴까지 오줌이 묻은 탓에 욕조에 물을 받아서 송이 전용 샴푸로 씻겼다. 씻길 때마다 송이는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욕조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집어넣었다. 수건으로 감싸서 방으로 데려오면 “으씨” 또는 “씨앙” 같은 소리를 냈다. 반항기의 청소년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욕설 같기도 했다.
송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헤어드라이어로 물기를 말렸다. 뒷다리를 마사지해주려고 슬며시 잡아당기니 힘이 들어가는 오른쪽 다리와는 달리 왼쪽 다리는 맥없이 덜렁거린다.
송이는 털이 다 마르기도 전에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잠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여기저기 부딪치며 돌아다니니 노곤하기도 할 것이다.
경험이 쌓이니 대처가 빨라졌다. ‘오줌을 누려나 보다, 넘어질 것 같다’하고 금세 반응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난다 해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내 맘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