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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Jan 04. 2023

송이의 첫 여행

  송이가 자궁 적출술을 받고 난 다음 주가 추석 연휴였다. 미리 기차표를 예매해뒀던 터라 송이를 데리고 전주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에 송이와 함께 사는 걸 반대하던 엄마는 카톡으로보낸 송이의 사진을 보시고는 예쁘게도 생겼다고 하시더니 더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여행 전날, 경과 확인 겸 동물병원에 갔다. 염증 소견이나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송이를 데리고 기차를 탈 예정이라고 했더니 출발하기 4,5시간 전부터 물을 먹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는 송이가 알아서 오줌을 참을 거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지하철역 가는 길에 송이는 짧게 오줌을 두 번 눴다. 영등포역에서는 플랫폼에서 잠시 바닥에 내려놓자 오줌을 잔뜩 눴다. 크게 얼룩이 생겼다. 마치 이제 몇 시간 동안 볼일을 볼 수 없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당황해서 쩔쩔매며 휴대용 화장지로 바닥을 훔쳐냈다. 냄새가 나면 어쩌지,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송이가 조금은 덜 괴로울테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영등포에서 전주까지는 새마을호로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자리에 앉아 이동장을 살짝 열었더니 송이가 고개를 들고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문제는 송이가 코를 곤다는 것이었다. 5kg도 되지 않는 자그마한 강아지가 얼마나 코를 골겠는가 싶겠지만 송이의 코 고는 소리는 성인 남자의 소리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큭큭큭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보자기처럼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 송이를 감싸서 품에 안았다. 자세를 바꿔주면 코를 골지 않을 것 같았다. 엉덩이를 받치고 몸통을 내 몸에 완전히 기대게 해서 안았더니 다행히 코 고는 소리가 멈추었다. 송이는 꿈을 꾸는지 입을 달싹거리기도 하고 얼굴을 부비며 품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전주역에 도착해서 자리에서 일어서니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송이에게 집중되었다.

  “어머,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타고 있었네?”

  “아니 어쩜 이렇게 조용하게 왔어? 짖지도 않고?”

  공연히 내 어깨가 올라갔다.      


  전주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손주라도 맞듯이 달려 나왔다.

  “어서 와라. 어디 보자.”

  반색을 하던 엄마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소형견을 상상했는데 사진으로 본 것보다 두 배는 커서 놀랐다고 나중에 엄마가 얘기했다. 사실 송이는 얼굴이 아주 작지만 몸이 조금 긴 편이다.


  딸들이 방문할 때에도 머리카락을 주워내느라 여념이 없는 엄마는 송이가 몸을 털 때마다 걸레질을 하면서도 내가 마음 상할까봐 싫은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2박3일을 머무는 동안 송이는 웬일인지 개라면 질색하는 아빠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대놓고 싫은 내색도 하지 못하고 곤란해하는 아빠를 보며 재민이와 나는 킥킥댔다.


  이틀째 되던 날, 여동생과 제부가 집에 들렀는데 송이가 제부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었다.

  “얘 좀 봐. 왜 이러니? 좋아서 이러는 거야?”

  엄마가 웃었다. 나는 송이가 제부에게서 동물병원 원장과 닮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겁을 먹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송이의 배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수술한 걸 알아챌 수 없었기 때문에 굳이 수술한 얘기를 하지 않기로 재민이와 말을 맞췄다.     


 송이에게 화장실을 알려줬지만 송이는 거실이나 주방에서 오줌을 눴다. 깔끔한 엄마가 질색할까봐 내가 부리나케 닦아냈다.

  J 언니가 전주엔 잘 다녀왔냐고 묻기에 송이가 남의 집에선 화장실에 안 들어가더라고 했다. J 언니는 “그럴 리가? 우리 이사했을 때, 송이 다리 아팠는데도 화장실 알려주니까 바로 적응하던데?”라고 했다.  

    

  다리 아플 때? 송이가 다리가 아팠다고?

    

  몹시 궁금했지만 언니에게 묻지는 못했다. 그리고 몇년 뒤, 송이의 다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연히 알게 된다.     


  전주에 한 번 다녀온 후로 들떠서 송이와 자주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송이는 낯선 곳에서도 나만 있으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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