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정법
“그냥 시원하게 한쪽 편을 들어. 이쪽도 저쪽도 이해된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어.”
저녁식사 시간, 술이 살짝 오른 남편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일어섰다.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에 맞춰 며칠 전 전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은 같이 여행 갔던 누군가의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이야기를 오늘 저녁 먹다 처음 꺼냈다. 며칠이 지난 지금에도 머릿속에 그 말이 맴돈다고 했다.
대화의 첫 시작은 무리 없었다. 난 남편의 마음을 잘 달래주었다. 남편도 나의 표현을 썩 마음에 들어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나는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해보려는 한 마디를 거들었다. 남편은 그럼에도 그런 표현은 잘못된 거라고 강조했고, 나는 그건 인정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옹호 아닌 옹호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나는 꼭 그렇게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주며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해야 했을까? 만약 내가 그때 철저히 남편 입장에서 기분을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우리의 저녁식사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으리라.
나는 후회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가정법으로 그 순간을 되돌려보는 상상을 한다. 만약 그때 내가 그렇게 상대방을 옹호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눈치채고 남편의 마음을 더 헤아려줬더라면, 아니 아예 처음부터 함께 상대방 욕을 함께 해줬더라면... 하고 말이다.
가정법의 조건이 단순한 가정문이라면 나는 더 많이 후회된다. 그 단순한 조건 하나를 그냥 넘기지 못한 후회 말이다.
복잡한 조건의 가정 문일 수록 복기하는 과정이 어렵다. 많은 조건이 실타래 얽히듯 엉커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씩 조건을 풀어나간다고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어내긴 쉽지 않다. 그렇게 이런저런 조합으로 가정법형 상상을 하다 보면 결국 현재는 달라질 수 없음에 허무함이 밀려들기도 한다.
살면서 가정법형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중에 수많은 가정을 하며 후회하느니 지금 상대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보다는 순방향으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덜 수고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