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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으니 May 21. 2020

머리가 깨지고 알게 된 것

인생을 깨우는 사건

새벽빛이 어스레하다. 5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니 그럴만하다. 부스스한 얼굴로 빠르게 출근 준비를 한다.


4살 된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유모차로 들어 올릴 생각을 하니 괜스레 미안하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안고 유모차에 뉘면 아이는 늘 그렇다는 듯 자리를 고쳐 잡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유모차로 5분 거리인 할머니 집으로 아이를 데려다 놓고 출근하러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나의 평소의 출근 모습이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잠들어 있는 아이를 안고 유모차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정말 찰나의 순간 ‘어지럽다 쓰러지겠네’라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나는 ‘쿵’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전날 과음으로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남편이 “뭐야? 무슨 소리야?”하며 깜짝 놀라 방을 나왔다. 나는 그때까지 웬 호들갑인가 했다.

평소에 넘어지더라도 조금 아프지만 툴툴 털고 일어나듯 난 괜찮은데 왜 저렇게 난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방에서 나온 남편은 깜짝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뭔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 피는 내가 주저앉아있던 자리 주위를 금세 채웠다.


혹시 안고 있던 아이가 다치지 않았나 먼저 살펴보았다. 괜찮았다. 놀라 울고 있었지만 다친 건 아니었다.

그 길로 난 119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 순간에도 회사에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응급실에서 머리를 꿰매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서툰 말로 "엄마 아프지 마세요." 한다.



나는 회사 입장에서는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지만 충실히 제 역할을 하는 책임감 있는 직원이었다.

1년의 육아휴직 후 회사로 복직하자마자 진급 케이스여서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영어 등급도 올려야 하고 회사 고과도 잘 받아야 진급을 할 수 있어서 복직하자마자 회사 일도 남들보다 열심히 해야 했고, 토익 공부에 퇴근 후 육아도 병행해야 했다.


몇 달 동안은 혼자 시간을 쪼개 토익 공부를 해봤지만 도저히 점수가 나오지 않아 새벽에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회사에 출근했다.

쓰러지던 그날은 새벽 학원을 병행한 지 한두 달쯤 지났을 때였고, 이후 다행히 원하던 토익 점수는 받았다. 그리고 무사히 진급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 이후 달라졌다. 회사에서 성공하겠다는 욕심, 그리고 열심히 하면 알아줄 거라는 쓸 데 없는 믿음을 싹 버렸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죽음이라는 공포가 스쳐 지나갔을 때 무엇보다 가족이 제일 생각났다. 평일 햇살을 받으며 아이와 손잡고 걷지 못한 것. 남편과 손잡고 데이트하지 못한 것.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것. 모두 내 소중한 가족 그리고 일상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회사 동료들은 여전히 그렇게 회사의 일에 몰두하여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 군중 속에서 빠져나와 그곳을 바라보니 참 이질적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속으로 들어갈 수도 들어갈 마음도 없다.

드라마처럼 이 순간에 사표를 쓰고 유유히 회사를 박차고 나오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 회사를 여전히 다니고 있다.


다만, 회사와 세상이 정답이라고 알려주던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라'라는 말과 정확히 반대로 하려고 한다. 그것이 내가 머리가 깨지고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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