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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희 Nov 21. 2021

제주 갱이 동백이

14.  동백이가 되다.

 서울에 다녀온 난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 솔직히 난 서울 개로 살고 싶었거든요. 내 꼿꼿한 허리와 날렵한 네 다리, 무엇보다 작은 얼굴이 서울 개 같았거든요. 그리고 서울에서는 친구들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냥 이렇게 서울에 살면 되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를 데리고 도로 제주도로 내려왔지 뭐예요? 풀 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가 내 코를 벌름벌름거리게 하긴 해도, 이건 서울에서도 맡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엄마랑 찾아간 평대 바다를 보며

 '서울에 없는 것이 더 많겠구나?'

 라고 생각을 바꾸고 말았어요. 새벽에 느껴지는 촉촉한 공기, 내 발바닥을 적셔오는 이슬, 한낮에 불어오던 한 줄기 바람, 어떤 색깔로 나타날지 모를 노을, 깜깜한 밤에 모래처럼 박혀있던 별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던 바다.

 난 영락없는 제주 갱이었더라고요...

  어딘가를 다녀온 엄마는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어요. 설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제주 아빠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구좌읍사무소에 갔다 왔대요.  드디어 엄마가 나의 보호자로 등록을 하고 온 거였어요. 엄마는 너무 기쁜 마음에 떡까지 사와서, 제주 엄마, 아빠이자 유일한 이웃인 옆집에 돌리기까지 했어요. 아휴, 하필 내가 못 먹는 떡을 사 올 게 뭐예요?...

 엄마는 내가 엄마의 첫 반려견이 되었다는 걸 서울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어요. 축하 인사를 받으며 엄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나도 조금 우쭐해지긴 했어요. 뭐 내가 멋있고  잘생기기도 했잖아요. 그리고 나는 엄마 집에 눌러앉기 전부터 이미 예상한 일이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내 계획대로 됐었다고나 할까요? 헤헤. 그래도 서류에 엄마가 내 보호자라니까, 이젠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어서... 나도 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는 행복하게만 살면 되니까요...

  엄마와의 힘들었던 시간이 기억났어요. 제주에 엄청 센 태풍이 와서 비가 매일매일 오는 데도,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똥을 위해서 매일매일 밖으로 나갔어요. 비를 맞아 온 몸이 젖기도 했고, 바람 때문에 몸이 날아갈 것 같기도 했지만... 엄마는 밖에서만 똥을 누는 나를 위해서,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며 나를 데리고 나갔어요. 엄마는 틈 나는 대로 창밖을 보고 있다가, 신나게 외치고는 했어요.

 "오 지금이야. 지금 비가 덜 온단 말이야. 얼른 나가자."

 엄마는 내 똥에 진심이었지 뭐예요. 

 그날 저녁 엄마는  졸고 있는 나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었어요. 

 "이제 넌 진표가 아니라 동백이란다. 나의 동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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