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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Aug 26. 2024

서른 넷, 이런 감자같은 결혼

어쩌면 이혼. 4











나는 내 인생의 장르가 늘 정극이 아니라 시트콤이라고 생각해왔다.

지난 인생이 대단히 즐겁고 유쾌해서는 아니고, 정극이라기엔 어딘가 유치하고 깊이가 없어서다. 내 인생의 행보는 곧 내 본질의 반영. 나라는 사람이 본디 유치하고 얕다. 깊이가 없고 얄팍하다. 어찌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나도 정확한 까닭은 모른다. 이유 없이 정서 소모가 심했던 질풍노도의 유년을 지나오는 동안 홀로 들입다 판 땅굴에 질려 더 이상은 깊어지지 않겠다 다짐한 탓일 수도 있고, 심각하게 살아도 가볍게 살아도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는 어느 날의 유레카 탓일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서른 몇 해를 사는 동안 이런 얕고 유치한 인간이 된 나. 나는 과거 임용 시험에 낙방했을때,


-어  시험 떨어졌어. 나랏밥을 먹으려면 역시 도둑질이 빠른 걸까. 그래 사람이 콩밥도 먹고 살아야지.


라고. 나를 근심하는 주변에다 이 상황을 나불거린 전적이 있다.

나의 방어기제는 내 인생을 제 3자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희극으로 보는 것이다. 그게 뭐든 견디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 좁은 원 안의 친구들에게 나의 상황을 희화해 떠들며 감정을 털어버는 버릇이 있다. 이렇게 당면한 문제를 심각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버리면 내 앞에 닥친 일이 아주 조금 덜 끔찍해지고, 차차 견딜만한 상태가 되곤 니까.



▲ 시즌 10까지 10번은 돌려본 시트콤 프렌즈. 돌직구 4차원 캐릭터 피비를 가장 좋아하지만, 굳이 유형을 나누자면 나는 모로봐도 농담을 방어 기제로 쓰는 챈들러 타입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골수까지 챈들러인 나라도 희화해 나불거릴 수 없는 상황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는 스물 둘에 가족 중 한명을 잃었을 때고. 그리고 두번째는, 서른 넷 벽두부터 남편이 내게 이혼 선고를 냅다 날렸을 때다.

아무리 나라지만, 하루아침에 인생을 반으로 쪼개야 하는 이 타격을, 대관절 어떻게 웃으며 말해야 좋겠는가.


여러분 내가 이혼을 할 것 같아. 왜? 남편이 나랑 아들을 버리고 다른 여자랑 살림을 차리고 싶다네. 어떡하긴 결혼 한번 해봤으면 된 거고 이제 끝이지. 남은 60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하하하!


라고?

그렇게 아수라처럼 반은 웃고 반은 울며 나불나불 털어대서 다 털어질 수 있는 비극이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넝굴 같은 긴 연애와 더 긴 결혼 관계는 떨어내도 흙묻은 줄기가 우수수 딸려 올라올 뿐 감정의 뿌리가 안 보였다. 힘을 주면 뿌리째 덜렁 뽑힐 시든 화초같은 시간인줄 알았더니. 아니 내 지난 세월이 화초가 아니라 감자였을 줄이야. 내 세월이 감자였다니. 이런 다 썩은 감자같은...


바라건대. 이 글을 읽는 친애하는 낯선 여러분에게, 남편의 혼인파탄선언 이후 쭉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던 나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파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이하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N일 후 반드시 이혼에 이르게 될, 땅 속 감자같은 (아직은) 기혼인 생활을 멀찍이 바라보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로는 차마 낱낱이 나열할 수 없는 지난한 감정을 아득한 공간에 웃음을 섞은 활자로 뿌리면, 늘 그랬듯, 내 안에서 이 비극의 깊이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의 망한 결혼이 희극은 될 수 없더라도  견딜만한 비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소망으로.















내 망한 결혼을 직시하려면 먼저 남편의 혼인 파탄 선언이란게 과연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 고로 이전 편에 두루뭉술하게 기록했던 남편의 폭탄선언을, 여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적는다.

2020년 12월 31일. 어딜 간다 정확한 말도 없이 외박을 한 남편은, 그날 밤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런 고백을 한다.


나한테 여자가 있어. 너랑 주말부부하는 동안 연인처럼 만나왔어.

그리고 지금(2021년 당시), 이 여자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걸 알았고,

이 여자는 내가 없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니, 나는 이 사람에게 가야겠어.

이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어.


여기서 문제. 이 전화를 받은 나의 반응은?


A. (울부짖으며) 이런 미친 자! 너는 걔가 죽는 것을 결코 못 볼 것이다! 내가 너를 먼저 죽일 테니까!

B. (얼이 빠져서) 아직도 연애만 하고 싶어하는 이런 미친 자...


사이다 한잔 거하게 들이켤만한 반응이란 A 답변 이후 당장 위치추적이든 뭐든 해서 남편이 있는 곳으로 쫓아가 암수 정답게 대머리를 만드는 것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현실엔 그런 사이다는 없었다. 현실은 B 답변 이후 얼이 빠져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를 반복하다 전화를 끊김 당하는 고구마만 있었을 뿐. 나는 이어진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했다.


그 길고 흰 새벽 내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맙소사 인생이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이었다니.

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간 내 아들은 이제 아빠 없이 크겠구나.


그 두 가지.

였던 것 같다.














어린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애착 유형을 분류할 때 '회피형' 이라는 개념을 쓰는데, 나는 내 스스로의 애착 유형은 모르겠으나 문제를 직면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회피형임이 명확하다. 문제가 눈에 뻔히 보여도 정면 충돌을 피하는 인간인 것이다. 정면으로 들이박아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내 경우엔 들이받음과 동시에 멘탈이 산산이 박살다는데 문제 회피의 까닭이 있다. 그러니 남편과의 5년 연애는 평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문제를 피해왔기 때문에. 어우 저기 문제가 있네? 까짓거 있어도 문제 없엉 피하면 그만이거등. 

결혼 이후 생활도 연애나 진배 없었다. 그런데 늘 그래왔듯 대충 피하고 묻어두며 적당히 살기로 마음 먹었던 이 다소 불행하던 결혼 생활 도중, 남편이 내 이마 정중앙에 거대한 문제를 메다 꽂아버렸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입으로 먼저 외도 사실을 고백하며 이 가정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다니.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이 전화 고백의 청천벽력 후 꼬박 하루가 지나고 나니, 남편은 2순위로 밀어놓고 1순위로 생전 믿지도 않던 신의 멱살부터 잡고 싶어졌다. 신이란게 있나. 눈 감고 귀 막고 바라는 건 오로지 내적 평화뿐이었던 나를 어찌 이런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인가.


보통 외도 발각이라 함은 이런 메커니즘이-주변에서 본 일이 없으므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내용에 의존함을 밝힌다-아닌가? 남편은 최선을 다해 숨기고 아내는 최선을 다해 꼬리를 밟는 것?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고 화와 카톡 기록, 블랙박스 기록까지 차례로 뒤진 후 배신감에 몸서리를 치는 것? 증거를 어떻게 더 모아야하나 고민하고 머리를 싸매는 것? 그리고 통렬히 소장을 날리는 것?

그런데 나는 이 중 그 어떤 것도 시도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모르는 남편의 생활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니 남편이 하는 짓이 의심스러우니 누가 뒤를 밟아보라 내게 적극 권유한대도 귀찮다며 드러누워 잠이나 잘 터였다. 남편의 사생활이나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지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바라는게 있다면 딱 하나. 아버지 노릇이나 잘 하길 바랐을 뿐이다.


이렇게 배신을 궁금해하지조차 않던 내게, 남편은 옛다 여기 문제 날아간다며 내 이마 정중앙에 독침을 쏘았다. 이제와 돌아 보면 그렇다. 남편은 숨길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 모르는 척 해왔던 것이다. 누구와 술을 마신대도, 그래 마셔라. 외박을 하고 온대도 여행을 간대도 그래 갔다와. 안 나가고 집에서 술을 먹는다고 하면 오히려, 차라리 나가서 마셔라. 왜 집에서 마시니 시끄럽게!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나와 대면하겠다며 지금 서울에서 내려오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전화를 받을 까지도 내 인생의 장르가 시트콤이 아니라 막장 드라마였는지 의문 중이었다. 분노와 충격과 이게 진짜일 리 없다는 미련. 그 모든 것을 한데 뭉친 감정을 화초처럼 덜렁 뽑아 마주한 남편 얼굴에 격하게 내던지고도 싶었다. 그러나 새벽 내내 뽑고 뽑아도 딸려오는 기억과 감정은 시든 화초가 아니라 덩굴이 지독하게 얽힌 감자였다.


집으로는 들일 수 없었다. 갓 여섯 살이 된, 어른의 언어를 다 알아듣는 아들 앞에서 험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 모르는 친정 엄마를 또 호출하여 외손주를 잠시 봐달라 맡겨놓고 내가 집을 나섰다. 뚫린 가슴으로 겨울 바람이 불었던 것도 같다. 그게 제법 아렸던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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