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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귀차니즘 대마왕이 엄마가 되었을 때

결혼은 곧 생활이다.

by 은호씨

언젠가 인터넷을 떠돌다가 20대 여성분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본인은 취미도 따로 없고 쉬는 날에는 거의 누워있는 게 전부라며 굉장히 게으른 편이라는 자아성찰의 글이었다. 나 또한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이라 무척 공감하며 읽었는데, 그 글이 유독 내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결론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은 이런 사람이기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결론이고, 현명한 젊은이란 말인가!


돌이켜보건대, 나는 결혼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눈앞에 부부생활을 버젓이 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지만,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자란 큰 딸에게는 두 사람의 결혼은 마치 ‘실패작’처럼 보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상적인 부부가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내가 그런 부부의 아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을 했던 것이다. 거기다 20대 후반, 딱히 자취를 할 만한 핑계도 없었던 나는 결혼을 독립의 수단으로 써먹었다. 정말 대책도 없이.


둘 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던 신혼 초, 나는 내가 얼마나 덜 자랐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름 집안일을 돕는다고 시늉이라도 한 축에 속한 딸이었는데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이란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었다. 한 주만 청소를 걸러도 먼지가 나뒹굴었고, 화장실 청소는 또 왜 그렇게 자주 해야 하는지. 나는 내가 빨래를 하게 된 이후 니트를 대거 갖다 버렸는데, 그 후엔 그동안 군말 없이 그런 옷을 빨아준 엄마에게 장문의 감사 문자를 보냈다.


결혼 전, 나에게는 정돈된 집, 깨끗하게 개어진 옷가지, 따듯한 저녁 식사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유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스러움이 필요한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이러한 집안일에 노고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특히 엄마의) 무척이나 쉬운 일로 치부해 버렸다는 것이 맞겠다. 그저 결혼만 하면 그런 일들은 아주 편하게,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중 가장 힘든 일은 단연 끼니를 챙기는 일이었다. 식탐이 없는 편에 속하는 나는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준 음식도 입맛이 없다며 안 먹기 일쑤였는데, 이것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된 이후에는 심지어 내가 아파서 먹을 수 없어도, 아이 밥은 해야 했다. 끼니를 대충 챙긴 날이면 죄책감마저 몰려들었다. 영양에 맞는 재료를 골라 이유식과 반찬을 만드는 것을 마치 ‘업무’처럼 수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놈의 ‘요리’가 결코 손에 탁 붙질 않았고,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강연에서 이런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너 결혼할 거니?’라고 묻는 것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라고. ‘너 결혼 생활할 거니?’라는 질문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흔히 결혼을 하면 ‘안정’을 많이 떠올리지만, 그 ‘안정된 생활’을 하려면 수반된 모든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와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한 컷으로 남기기 위해 해야 하는, 수많은 자잘한 일들이 가끔은 조금 버겁다. 사는 것 자체를 ‘귀찮아.’라고 평하기도 하는 내가 감히 ‘결혼 생활’에 도전했다니! 이 무모함 덕분에 나는 사랑스러운 딸과 곰돌이 남편을 얻었고, 그 때문에 수 천 번의 설거지, 빨래, 식사 준비에 걸려들었다. 이런 게 바로 등가교환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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