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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반’과 ‘일반’의 싸움

진정한 남남이 부부가 되기까지

by 은호씨

2025년, 올해는 우리 부부가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새삼 놀랍다. 연애 기간까지 합치면 내가 이 남자를 안 지 벌써 12년이 되어 간다니.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직도 이 사람을 잘 모르겠다. 꽤 긴 결혼 생활 동안 위기 아닌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는 먼저 이 생활을 한 선배님들의 이야기에서 위로를 얻었다. ‘지금 이렇게 단단해 보이는 부부에게도 피 튀기게(?) 싸우던 시절이 있었구나.’하면서. 나 또한 거저 얻은 결혼 10주년이 아니니 ‘나의 그 시절’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신혼 초, 우리는 많이 싸웠다. 연애하는 동안 상대방이 내 마음과 똑같은 줄 알았던 것이 콩깍지의 일환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를 하며 조금씩 일어난 균열은 진짜 삶이 시작된 후, 결국 와르르 무너졌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배시시 웃던 시간은 잠시, 나는 조금씩 불만이 쌓여갔다.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눈에 거슬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왜 양말은 여기다 벗어 두는 거지? 한번 쓴 수건은 왜 빨래통에 넣질 않고, 식탁 의자에 걸어 두는 거야? 화장실은 왜 이렇게 더러운 거지?


이러한 나의 불만은 부부가 되어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대폭발 하게 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화가 났었는지 그 시작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상상 속의 나는 이미 가정법원 앞에 서 있었다. 부모님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상에까지 이르자, 창피하게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평소 말수가 적은 그가 무거운 입을 떼고 그동안 자기도 많이 참았다며 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에 수건은 왜 자꾸 구겨놓는지, 한 번 밖에 안 쓴 수건은 왜 자꾸 빨래통에 넣는지, 왜 우리 집에는 국이 없는지.


나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그가 불만이라며 말하는 것들이 너무나 사소해서. 그리고 그다음 순간,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래, 왜 나만 참고 있었다고 생각했지? 30여 년을 따로 살았으니 남편도 같이 사는 삶이 불편했을 수 있는데. 왜 나는 내 방식만 옳다고 생각했지? 삶의 방식에 옳고 그름은 없는데. 그날 우리는 서로가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 세 가지를 공유하고, 그중 하나라도 고쳐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것이 지켜졌느냐고? 지금은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남편도 그러겠지. 그 이후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했고, 그것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나의 일반’과 ‘상대방의 일반’이 끊임없이 부딪히는 일이다. ‘원래 주말엔 집에서 쉬는 거야.’, ‘밥 먹을 땐, 보통은 국이 있어야지.’, ‘생일에는 케이크가 꼭 있어야지.’처럼 각자의 삶에서 ‘일반적’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상대방의 것과 다를 때 다툼이 일어난다. 각자가 ‘원래 이렇게 해야 해! 이게 옳아!’라고 우기기만 한다면 결코 이 싸움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너는 그동안 그랬구나. 그런데 새로운 우리의 가정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머리를 맞대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밥 먹을 땐, 국물이 있어야지’ 집안에서 자란 남편은 신혼 초 퍽퍽한 맨밥이 꽤나 힘들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이후, 나는 웬만하면 국물이 있는 밥상을 준비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칼 각을 중시하던 남편은 덜렁이 아내가 정리한 빨래 더미도 조용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맞추려는 자세’ 말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만드는 다른 방도나 더 빠른 지름길은 없는 것 같다.


나는 10주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 집’할 때의 ‘우리’가 선명해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남편과 나, 그리고 딸아이를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방식, 우리만의 규칙 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나는 그것들이 바른 방향으로 향하는지 고심하는 일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집의 분위기와 문화가 우리 아이의 ‘일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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