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인프제, 모두를 안아주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를 만나는 일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진 것은. 난 이상한 버릇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이후 며칠 동안 그날 나누었던 이야기 중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이나 친구가 속상했을 말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는 일이다. ‘특별히 꼭 해야지.’라고 결심하지도 않았는데! 며칠은 꼭 이런 생각이 머리에 맴돌아 고생을 한다. 만약 맘에 걸리는 말이라도 떠오른다면,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생각이 많아도 너어어어무 많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쓸데없는 망상을 즐겼는데, ‘우리 집이 부잣집이었다면’, ‘내가 연예인이 된다면’, ‘아빠가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과 같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였는지 드라마를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이렇게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상상은 성인이 되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난 이러한 생각의 타래를 친구들에게 쏟아내 자주 고생을 시켰는데, 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항상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한마디로 내가 ‘피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내가 답답하면서도,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 내가 싫어질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이 모든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나 보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MBTI를 만났다.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많은 이들이 열광하면 되려 반감이 생기는 독특한 면이 있는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오는 사람이 많아지자 결국은 마지못해 ‘그 검사’를 하게 되었고 ‘INFJ’라는 결과를 받아 들었다. 몇 번을 해도 검사 결과는 같았는데, 이 4가지 성향은 놀라우리만치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I 내향성 N 직관 F 감정 J 계획
그날, 나는 밤새 인프제의 성토글을 읽으며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는지 모른다. 이 지구상에 나와 같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가끔은 내가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 모든 게 성향이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라 ‘내 잘못은 아니’라는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그중 몇 가지는 ‘나는 왜 이러지?’라는 내 오랜 궁금증에 해답이 되기도 했다.
나는 보통 처음 만난 사람에게 ‘E’가 아니냐는 질문을 잘 받았고, 그런 일은 특히 1:1 대화에서 주로 발생했다. 그리고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어서 눈치가 빠르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속마음이나 거짓말까지도 너무 잘 알아차려서, 혼자서 조용히 상처를 받기도 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신경 쓰지 말았으면 하면서도 그래도 열에 한두 번은 관심을 받길 원했다. 그래서 중고생 때에는 부반장을 하기도 했는데, 명확하진 않지만 나 스스로 ‘반장’까지 하기에는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잘 나가다도 한 번씩은 굉장히 즉흥적이어서, 퇴사 후에 홀연히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그 드넓은 섬을 오롯이 대중교통으로만 여행했다.(20대 초반의 여자가 대로변을 걷다 차를 얻어 타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척 오싹한 일이다.)
이외에도 ‘맞아! 맞아!’ 맞장구치며 읽었던 인프제들의 특징은 더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나의 경우와 맞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와 비슷한 결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오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너무 많아 정말 누가 뒤통수 한 대 치며 생각을 멈춰줬으면 하는 날이면, 여기 어딘가 근방에도 있을 ‘인프제’들을 떠올린다. 진짜 한번 다 같이 모여 위로 한마당을 펼쳤으면!(많은 인프제들은 숨어서 상황을 살필 듯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