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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못난이 시장의 개척자

자존감과 육아의 상관관계

by 은호씨

오늘도 업무를 하나 마치고, 엑셀 창을 닫기 전 확인을 거듭한다. 수치를 입력하며 이미 한 번 이상 확인했건만, 출력까지 해서 또다시 하나씩 비교해 본다. 무슨 마법처럼 숫자가 바뀔 일도 없을 텐데.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퇴근하고 집에 있다가도 뭔가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불안해질지 모른다. 난 어쩌다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못 믿는 사람이 되었을까.


불우했던 가정환경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겼던 20대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토록 깊은 자기 연민에만 빠지지 않았다면 나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이만치 살아보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불행 배틀을 시작했던 한 무리에서는 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는 일 즈음은 어디 명함을 내밀 수도 없더라.


소심하고 말수도 적었던 내가 그나마 어느 정도라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가정환경 덕분이었다. 학생 신분이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돈을 벌어 엄마를 돕겠다고 나설 배짱도 없던 아이였다. 그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기뻐했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면 선생님이 ‘나’라는 아이를 봐주셨기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1등'에 다가서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내 성정과 머리 탓이렸다.


엄마가 그렇게 부르짖던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졸업을 하고도 4년제 졸을 뽑는 기업에는 선뜻 이력서를 내지 못했다. 딱 한 번 그룹으로 진행한 최종 면접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으나, 열의에 찬 참가자들 사이에서 나는 입 한 번 떼지 못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내가 그나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뽑힐 만한 곳에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회사 업무에서는 어땠겠는가. 나는 늘 스스로를 극단으로 몰아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난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더 잘해야 한다며 나를 다그쳤다.


인간관계라고 달랐을까!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내 생애 가장 강렬하고 달콤했던 첫 연애를 했으나, 대차게 차인 나는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며 크게 후유증을 앓았다. 그렇게 잘해주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헤어짐을 통보하자, 나는 그 이유를 ‘나의 못남’에서 찾으려 애를 썼다. 자책은 몇 달간 이어졌고, 잠수(?)를 탄 나를 오랜 수색 끝에 찾아낸 친구의 말 한마디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못났다 치자. 그럼 그런 너의 친구인 나도 못났겠네.”


이 정도로 못난이였던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었다니, 감개무량할 일이다. 하지만 자기 확신을 하지 못하는 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는 아직도 나를 의심한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게 맞을까. 아이에게 꼭 해주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좋은 어른’이 아닌데,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나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는 ‘육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사랑하게 만들고 ‘나’라는 존재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 또한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었다. 내가 이 예쁜 생명을 품었고 낳았다는 사실, 내가 아이를 위해 모유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 내가 없으면 내 딸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나’라는 존재를 엄청 대단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가끔 내가 미워질 때마다 아이를 떠올리며 ‘내가 적어도 우리 아이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낮은 자존감’에 갇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쓰고 있자니, 또다시 부끄러워진다. ‘내가 한 게 어때요. 멋지죠?’가 대세인 세상에서 ‘나는 이렇게 못났어요.’를 외치고 있다니. 그러다 생각한다. 나름 블루오션이라고.

‘잘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못난 사람도 꿋꿋이 잘 살아가고 있어요.’ 시장의 개척자라고 불러달라.

거기에 덧붙여 한참 부족한 엄마지만, 아이를 위해 ‘나’를 돌아보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려는 태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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