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1년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이 하나 있다. 판타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시공간이 모두 멈추고, 나에게만 주어지는 ‘Extra’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그대로 멈춘 채, 나에게만 제8요일이나 3월 32일이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왜 나는 아등바등거리며 단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하루를 꽉 채우고도 더없이 공허한 마음이 드는 걸까.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는 밀린 빨래와 청소 같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씻기고 공부를 조금(아주 조금!) 봐주고 나면 금방 잘 시간이 돌아온다. 나의 하루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나는 보통 7시에 기상한다. 아침으로 먹을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면 아이를 깨워야 할 시간이 된다. 잠에 취한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등원 준비를 하다 보면 어떤 날은 내 명이 단축되는 것만 같다. 집에서 서울로 나가는 버스의 배차 시간은 15분이나 되기 때문에, 이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라는 생각에 나는 계속 아이를 채근하게 된다. 결국 나는 아이로부터 ‘빨리핑’, ‘닦달핑’류의 별명을 여러 개 얻었다.
일단 버스에 실려 출근을 하고 나면, 일은 기계적으로 하게 되더라. 어차피 매달 같은 사이클로 일은 반복되고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간혹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에 그곳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남들보다 30분 먼저 퇴근한다. 유치원 하원을 6시 30분까지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칼퇴는 가능하다. 항상 친구 한 명과 마지막까지 남아 나를 기다리는(같이 놀아주는 친구야, 고마워.) 딸래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오면 보통 7시 즈음이 된다. 그 이후의 시간은 또다시 돌아온 집안일 타임! 틈틈이 아이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도 놓칠 수 없다. 아이와의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가진 약간의 강박임을 인정하겠다.
어쩌면 내가 오롯이 가질 수 있는 ‘내 시간’은 버스에 실려 왔다 갔다 하는 통근 2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꼭 허비하고 만다. 아이와 아침에 조금이라도 다툰 날이면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가게 되고, 퇴근길엔 발걸음을 재촉하며 네이버 뉴스나 검색하게 된다. 누군가 나에게 초능력을 하나 준다고 한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순간 이동’을 고르겠다.
혹자는 잠을 조금 줄여서 네가 그토록 원하는 그 시간을 만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중에는 7시간, 주말에는 9시간 정도를 잔다. 20대 때는 12시간씩 자다가 허리가 아프면 일어나기도 했다. ‘나’라는 인간에겐 잠이 먹는 것보다 소중해서 차마 그건 못하겠다. 게다가 언제 또 불면이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잘 수 있을 때 자 둬야 한다.
그렇게 주 5일을 달려, 도착한 주말의 시간은 모터를 달아놓은 마냥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 가족 행사, 문화 센터, 아이 친구와의 약속 등의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또다시 출근을 해야 할 날이 돌아온다. 월요일 아침, 아이가 ‘엄마, 주말이 3개였으면 좋겠어.’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기에 나는 대답 대신 꼬옥 안아주었다.
지금처럼 계속 살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또 흘러가고, 아이는 그만큼 자라겠지. 뭐 어른들은 낳기만 하면 아이는 그냥 크는 거라고들 하시니까. 그런데, 정말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누구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시간은 모두 ‘사치’라고 여기게 되는 이 삶이 정말 보통인 걸까. 다들, 어디서 나 몰래 시간을 사고 있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