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부가 되어봅시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결혼 전에는 부모와 관련된 영상을 보면 몇 초만 있어도 울 수 있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전해지면 자연스레 엄마 아빠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제는 나만의 눈물 포인트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부부’와 관련된 것들이다. ‘치매 걸린 노년의 아내를 극진히 간병하는 남편’, ‘함께 아이들을 위해 고생하는 부부 사장님’ 등등.
부부란 무엇일까. 우리 부부는 예식장에 고용된 주례 선생님께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노라’ 맹세했지만, 그때부터 진짜 ‘부부’가 된 건 아닌 것 같다. 자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면 ‘게임 끝’이라고 하던데, 난 이미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남의 편’이었던 남편이 ‘내 사람’이 되었던 일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첫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도 엄마에게 미주알 고주알 할 정도로 친구 같은 딸이었다. 오늘 뭘 먹었는지부터 누가 날 좋아하는 것 같은지(?)까지 딱히 주제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던 것 같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양은 줄었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였다.
미처 정서적 독립이 되지 않았던 신혼 초, 나는 남편과 다툰 데다 회사 일까지 힘들면 긴긴 통근 시간 중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남편 험담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신혼이 아니던가. 하룻밤 사이에도 우리는 싸웠다 화해했다는 반복 했고, 어느 날 엄마가 남편에 대해 나쁘게 말하자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계속 이렇게 하면 ‘엄마가 사위를 좋아할 수 없겠구나.’라고. 그리고 ‘내 남편은 나만 욕할 수 있는 존재구나.’하고.
그리고 남편이 작은 수술을 해야 했을 때. 남편은 부모님들이 걱정하실까 주중에 연차를 내고 수술에 응했는데, 나는 혼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손가락 수술이었건만, 수술 동의서에는 왜 그렇게 무서운 말들이 많은지. 2-3시간 남짓이었지만, 그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보호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출산을 했을 때. 나는 태반이 질 입구를 막고 있어 제왕절개를 해야 했는데, 수술 바로 다음 날 첫 손주를 보고 싶어서 한달음에 달려오신 시어머님과 단둘이 병실에 남아있었다. 미역국을 주구장창 먹기 때문인지 수술 중 소변줄을 꼈기 때문인지, 당시에 시도 때도 없이 요의를 느꼈는데 급한 와중에도 어머니께는 그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 땀을 뻘뻘 흘리며 참다가 잠깐 일을 보러 나간 남편을 급히 불러 끙끙거리며 화장실로 함께 가서 남편이 팬티를 올려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와 이혼은 못하겠구나.’
그리고 또 아이를 키우며 함께 했던 희로애락의 시간이 있다. 아이가 뒤집기를 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던 그 시간, 첫걸음마를 연습하던 그 공원의 시간, 밤새 구토를 하며 칭얼거려 함께 걱정했던 시간, 잊을만하면 찾아왔던 야경증의 시간, 누구나 한 번쯤은 한다는 고열로 인한 입원 기간 등이 그것이다.
그냥 한 번에 뿅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닌데, 하물며 부부는 어떻겠는가. 아이를 낳고 보니, 모성애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더라. 아이와의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진짜’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부부가 되기 위해서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과묵하던 남편은 조금 수다쟁이가 되었다. 유난히 힘든 사람이 있다며 회사 사람 욕을 쏟아내던 날, 나는 조금 기뻤다. 워낙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는 사람이라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나’를 정말 ‘아내’로 인정하고 자신의 고민거리를 나누는 것 같아 좋았다. 항상 혼자서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려고 하는 우직한 남편이 고맙다.
겁쟁이에 소심한 와이프지만, 나에게 조금은 기대도 된답니다. 우리 ‘진짜 부부’가 되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