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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측은지심으로 해결하라

모든 소아과에 오픈런이 있는 건 아냐

by 은호씨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부모들은 꽤 많은 난관에 부딪히곤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맨 처음 신생아일 때는 잠, 수유와 같은 신체적인 어려움에 부딪혔고, 돌이 지나고 나서는 완전히 체력전이었다. 아빠를 닮아 튼튼한 우리 아이의 혈기 왕성한 호기심 앞에서, 나는 늘 패배자였다. 적어도 24개월까지는 기관에 보내지 않겠다던 나의 의지는 아이의 지치지 않는 체력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기관에 아이를 맡기자,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적응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 하지만, 보통의 아이일 경우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많고 매일매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기관을 싫어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딸아이도 일반적인 적응 기간을 보낸 후에는, 기관 생활에 완벽 적응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난관은 ‘어린이집 적응’이 아닌, 바이러스와의 사투이다.


단체생활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렇게 자주 아프다.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바깥 외출도 잦아지니 결코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시기는 다양한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며 면역력을 만드는 시기인 것 같다. 특히, 3-4세에는 정말 병원을 쉴 새 없이 다닌다. 아마 1년 중 약을 먹지 않은 날을 세는 것이 빠를 것이다. 우리 아이는 이 시기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열감기가 길게 이어져 중이염이 되었고 고열이 지속되며 결국은 그 작은 팔에 바늘을 꽂아야 했던 것이다.


나 또한 코로나 시기에 어린아이를 키우며, 병원의 여러 면면을 따지게 되었다. 우선, 소아과들마다 특색이 다 달랐다. 어디는 약을 세게 지어서 한 번에 끝나게 하거나, 어디 의사는 엄마의 의견을 정말 끝까지 다 들어준다거나. 나는 다양한 ‘카더라’ 통신에 의존하여 아이에게 맞는 소아과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 시기를 거치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오픈런을 하는 소아과는 역시 다르구나!’


엄마들도 인간이니, 어찌 보면 친절한 병원에 마음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아파서 짜증이 잔뜩 난 아이를 원에도 보낼 수 없어 극한(?)의 상황에 간신히 멘탈을 부여잡고 있는데, 의사한테까지 한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의사가 엄마의 마음을 읽어주고, 원하는 약까지 처방해 준다면 그 병원은 고생하며 방문할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병원도 사업이 아닌가! 나 또한 집에서 일하던 시절, 오픈하면 1분이면 예약이 차는 그 원장님 진료를 받으려고 어플 월 결제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어플에서 순서를 기다려 핫한 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는 처지가 된 나는 동네에 유일하게 주말 진료를 하는 소아과로 가게 되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병원은 진료를 보고 나오면 엄마들의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상한다는 평이 있는 병원이었다. 이를테면, 엄마가 아이의 상태를 보고하며 자신만의 진단을 내놓으면 ‘네가 뭘 알아.’라는 느낌이 들도록 면박을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양자 간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과장이 섞일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듯, 어떤 사건에는 거짓과 사실이 혼재하므로 일단 그 병원이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는 한다는 것은 진실에 가까울 것이었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갔던 그 병원에서 기분이 상한 채 나왔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증상에 딱 맞게 조제된 그 약으로 아이의 감기는 한 방에 좋아졌다.


그렇게 병원에 대한 고민이 늘어가던 즈음, 이 병원을 잘 다니던 아이 엄마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이마를 ‘탁’ 치게 되었다.


불쌍하지 않아? 그냥 난 좀 측은하게 생각해.


그 말인 즉, ‘의사’라는 좋은 직업을 가진 그가 뭔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면 참 좋은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아서 퉁퉁거리는 게 참으로 안쓰럽다는 식의 해석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엾다’고 여기면 마음이 항상 평안하다더니. 그 엄마한테 물어볼 걸 그랬다. 혹시 종교가 불교신가요?


이쯤 되니, 떠오르는 대사가 하나 있다. 나의 최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이다.


인간이 인간한테 친절한 건 기본 아니냐? 뭐 잘났다고 여러 사람 불편하게 퉁퉁거려.


난 이 대사가 홀로 힘든 일상을 버티던 ‘진짜 어른’이었던 동훈이, 아직은 ‘덜 자란 어른’인 지안에게 했던 따듯한 충고였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조금 마음이 아프다. 불만에 가득 차 진료를 보던 그 의사분도 아주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겠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한편으로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엄마인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신 분일 테니, 기본적인 ‘친절’도 조금 가지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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