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성악설에서 시작하여 똥기저귀까지
*해당 글에는 더러운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읽음’에 주의를 요합니다.
최근 아이 친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아이들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그래도 ‘본성은 선하다.’는 쪽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 엄마의 ‘성무성악설’ 주장에 확 마음이 쏠렸다. 아이는 ‘무無’로 태어나니 주변 환경에 따라 ‘선善’과 ‘악惡’이 결정된다는 것이 주 논리였다. 그렇다면 아이의 모든 것은 내가 가르쳐 준 꼴이 되는 게 아닌가!
바야흐로 감정까지 가르쳐야 한다며 설파하는 시대이다. ‘지금 네가 느끼는 이 감정은 게임에서 져서 분한 감정이란다.’, ‘친구가 가진 물건이 너무 갖고 싶어 눈물이 나는 이 감정은 시기심이란다.’ 오은영 박사님 톤은 기본 장착이다. 하기 싫은 것도 해내야 하는 참을성도 가르쳐야 하고, 좌절을 경험시켜 회복탄력성도 기르도록 이끌어야 한단다.
처음 태어난 아가는 무척 작아서(아빠 팔 한마디보다도) 그 안에 뭐가 들어나 있을까 싶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걸음씩 걷는 법, 물을 마시는 법, 숟가락을 사용해 밥을 뜨는 법 등 하나씩 가르치다 보면 어떤 날은 감격스러웠다. 우리 아이가 인간이 다 되었다며, 어린이집 선생님과 고마움 섞인 안부를 나눈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모든 걸 다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일이 있었다. 우리 딸아이는 남들과는 기저귀 떼는 순서가 달랐는데, 보통은 대변 다음에 소변을 가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똥 기저귀’를 가는데 완전히 지쳐가던 무렵이었다. 열이 많은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일찍부터 기저귀를 안 차겠다며 완강하게 거부해 낮 기저귀는 금방 뗀 편이었다.
그런데 변의가 오면 꼭 집에서, 자신이 원하는 구석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서만 실례가 가능했다. 아마 아이를 키워본 분들은 알겠지만, 3-4살 아이의 똥 기저귀를 치우는 일은 별로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나는 이제는 완전한 모양을 한 그것을 변기에 내려보내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내려보낼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좋아하는 캐릭터로 된 변기 커버를 사고, 칭찬 스티커를 동원하여 여러 번 도전 기회를 가져도 보고, 원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으로 환심을 사기도 해 봤지만 변기에 앉기만 하면 아이는 얼굴만 빨개질 뿐 결과물을 내놓질 못했다.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분명 힘은 주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도 성공을 하질 못하니, 나는 애가 탔다.
그렇게 3-4일을 내리 실패하면 아이는 배가 아파 울상이 되었고,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기저귀를 대령하게 되었다. 한 40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난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변기를 사용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기도 해서 함께 디데이를 정했고, 기저귀도 더 이상 사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도전!하고도 3일째 되던 날, 그날도 아이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힘을 주면서도 변을 참고 있었다.
딱 한 번만 어떻게 성공하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번이 이렇게나 어렵다니! 나는 너무 답답해서 아이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너 자꾸 참지?! 힘을 주라고. 끙차!’ 아이 손을 잡고 같이 힘을 주다 보니 나까지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참지 말라며 오해하자, 아이는 억울한 듯 갑자기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엄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나는 갑자기 띵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아이는 아직 변기에 앉아서 ‘똥’을 싸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키도 작아 발판에 발이 닿지 않으니, 몇 배는 더 큰 힘이 필요할 터였다. 내가 말하는 막연한 ‘힘줘!’는 아이의 ‘어떻게!’의 해답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아는 더러운 단어를 총동원했다. 그 과정에서 ‘똥구멍’, ‘아랫배’, ‘배꼽 밑’, ‘거시기’ 등등의 단어가 등장했음을 시인한다.
이제는 ‘쾌변의 아이콘’이 된 우리 아이에게 내가 요즘 가르치고 있는 것은 바로 ‘혼자 자는 것’이다. 분리 수면이 기본값이라는 요즘, 내가 조금 미련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집의 구조적인 부분도 있고, 언제 또 아이와 함께 잘 수 있을까 싶어 그 시기를 자꾸 미루게 되더라. 하지만 초등 입학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또다시 물러날 곳은 없다.
엄마의 ‘팔꿈치’(왜 하필?)를 만지면서 자는 우리 아이, 나 또한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항상 나 닮은 아이를 낳아 고생 좀 해보라 하셨는데, 꼭 그 말이 맞아떨어졌다. 이제 우리 아이가 엄마의 살결을 만지며 자던 행복한 기억만 남기고 홀로 자는 그다음 성장을 이루길 바란다. 자, 또 한 단계를 업그레이드 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