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무서운 줄 알면서도, ‘말’하고 싶다.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을 고르겠다.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던 학창 시절의 따돌림, 직장 동료와 마음을 나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회사 내부에 전해져 하게 되었던 면담, 가족이라며 쉽게 했던 조언에 동생이 마음 상했던 일 등등.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말’로 시작되는 모든 일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친한 친구의, 남편의, 친구와 결혼했다. 그러니까 내 남편과 친구의 남편은, 그리고 나와 내 친구는 각각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소개팅을 주선했던 친구는 종종 내 하소연에 ‘그러게, 누가 결혼까지 하래?’라고 받아치곤 했는데, 이 일련의 관계는 신혼 초 종종 물의(?)를 빚곤 했다.
이상하게 사회에서 관계를 맺은 친구들을 그나마 비슷한 성향의 친구가 많은데, 어릴 때 사귄 친구들은 좀 나와 많이 다르지 않은가? 남편과 그 친구도 그러했고, 나와 내 친구도 그랬다. 우린 서로의 남편과 ‘나라면 절대 살 수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하곤 했는데, 이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말수가 적은 편인 남편은 신혼 초 내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과 회사생활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이 역할을 결혼 전처럼 친구에게 맡겼다. 아마 그 내용 중에는 굳이 표현하자면 ‘남편에 대한 험담’도 다수 포함되었을 것이다. 친구는 나와는 달리 남편과 미주알고주알 작은 이야기도 나누는 편이었고, 내 남편이 친구들 모임을 하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이런 말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내가 전에 이렇게 한 게 그렇게 답답했다며?
무던하고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다행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가 씨앗이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진 적은 없었다. 다만, 나는 매번 당황해서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게 아니라’로 시작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놔야 했다. 일단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두 다리를 거쳐 남편에게 전해졌으니, 어떤 뉘앙스와 어투로 전해졌을지 난 도대체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본인의 남편에게 말을 전한 친구를 잠시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그 말은 애초에 ‘내 입’에서 나왔으니까. 그동안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내가 뱉은 말이 내가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비되어, 결국은 내가 만든 게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을.
평생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나로서는, 친구를 만났을 때 말을 가려할 용기는 당최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무렵, 알게 모르게 친구를 조금 멀리했었다. 남편과의 문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입꾹닫’ 남편을 끌고 와 어깃장을 놓더라도, 우리 두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난 이미 결혼을 했고, 내 가족은 이제 나와 남편이었고, 우리가 평생 함께 하려면 우리만의 대화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아주 작은 고민부터 소소한 이야기를 모두 나누는 친구네 부부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서로의 점심 식사 메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사랑의 크기라고 여겼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차 깨닫게 되었다. 내 남편이 가진 우직함과 책임감, 간간이 보내오는 걱정 어린 문자 또한 사랑의 표현임을. 그저 사람이 다르니, 표현 방식도 다른 것뿐이라는 걸.
친구와는 잠시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했다. 내가 둔 거리를 친구가 모를 리 없었다. 서운함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결국 나는 내 마음을 터놓게 되었고, 어릴 때 친구가 좋은 게 무언가! 우리는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하면 안 되는 이야기들은 아예 입 밖에 꺼내지 않았고, 친구도 이제는 남편에게 모든 일을 다 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이 일도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비밀이야.’ 딱지를 붙인다 한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돌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그말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또 이렇게도 생각한다. 어른이라는 게, 그 모든 말을 안에 담고 삭히고 참아내야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가혹하다고. 말이 오해를 낳고, 싸움을 만들고, 격분하여 불까지 내는 세상에서 나 혼자 옹송그리는 게 참 버겁다고.
그래서 더더욱 ‘사람’이 필요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누군가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나 생각을 예쁘게 포장하여 내놓을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고민도 경청하고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곱게 나이 먹고 싶다.’고까지 하면 너무 거창한가? 나를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 나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길 바란다. 요즘은 그마저도 할 시간이 없긴 하다만.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