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찾아 십이만 리는 남았다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1억이 채 되지 않는 지방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전셋집에 들어간 현금은 고작 3000만 원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하면 실로 무모한 시작이었다. 결혼 적령기, 혼기가 꽉 차 만남을 시작한 우리는 마치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결혼을 향해 두둥실 흘러갔다.
남편은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결혼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연애 기간이 길어지는데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프러포즈’(심지어 외국에서!)까지 한 남편이 실제 결혼 준비에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이자 안달이 났다.
이제와 생각하면 탁 까놓고 이런저런 상황을 이야기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마는, 서로 눈치만 보던 당시의 애송이(!)들은 그러질 못했다. 여러 오해가 겹겹이 쌓이고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돈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결혼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20살부터 일을 시작한 남편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을 다닐 정도로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 푼 두 푼 10년을 모은 돈으로 작은 임대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다 계약금을 모두 날리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그때부터였단다. 돈을 모으지 않고 펑펑 쓰기 시작한 것은.
잘됐다. 오빠가 이미 사기를 당했으니, 앞으로 또 당할 일은 없겠네!
남편의 이야기를 들은 내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번 호되게 당해서, 앞으로 더 조심할 테니 우리 앞날엔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였던 것 같다. 시작이 너무 조촐하여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 또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좋은 기억은 거의 없었던 신혼집을 지나, 다음 집은 신축 빌라였다. 그 당시 나는 퇴사와 난임 등으로 무력감이 심해서, 집을 보지도 않은 채 입주를 결정했다. 혼자서 집을 알아본 남편이 그 빌라 1층에 있는 중국집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가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나는 순전히 그 집 짜장면이 아주 맛있어서 바로 동의했다.
사실 별다를 게 없는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이 집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이를 얻어 낳았고, 그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쳤고, 또 어린이집을 보냈다. 그렇게 5년을 살았다. 빌라에서 일어나는 전세 사기가 극성인 요즘, 그저 조용하게 그 건물 4층에서 함께 살았던 주인 내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전세금이 올라 하늘을 찌르던 시기, 결국 우리는 또다시 집을 알아봐야 했다. 마침 아이도 꽤 자라서 집이 좁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다음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이번엔 나도 함께였는데, 잠깐의 방문만으로 내가 살 집을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금 나는 그 ‘세 번째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같은 동네에 위치한 이 구축 아파트에 오기 위해 결혼생활 동안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그래도 뿌듯했다. 어른들이 ‘조금씩 모아 세간을 늘려가는 재미’가 있다고 하셨었는데, 이런 게 바로 그 재미인가 싶었다. 시댁이나 친정에서 돈을 조금씩 보태주고자 하셨으나, 나는 행복에 겨워서 감히 이렇게 말했다.
다 부모님들 덕분이에요. 그동안 건강하시고 무탈해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집을 넓힐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인간은 얼마나 간사한가!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빌라에서 아파트에 들어섰다며 기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거실까지 해가 들어온다며 함박웃음을 짓던 나였는데, 살면서 자꾸만 단점을 찾아내고 불만을 쌓아두는 내가 실망스러웠다.
화장실은 하나인데 아빠와 딸아이는 왜 늘 같은 타이밍에 배변 신호가 오는지, 구축 아파트는 왜 이렇게 겨울철 외풍이 심한지, 다른 친구들의 집은 모두 인테리어가 삐까뻔쩍한지. 나는 비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게다가 아이의 초등 입학을 앞두고 살 곳을 선택하는 기준 또한 달라지고 있어 혼란스럽다.
우리의 다음 집은 또 어디일까. 물론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아우르는 완벽한 집을 구하려면, 자산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빚도 자산이라니, 조금 용기를 내볼까. 이사가 참 보통 일이 아니던데, 우선순위를 잘 정해서 올해는 좀 더 나은 곳으로 터전을 옮길 수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