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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홀로서기를 지켜보는 연습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by 은호씨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며 배움을 얻을 때도 있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는 신기하기도 했다. 평생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던’ 나는, 우리 아이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랐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회성’이었다.


그렇다고 뭐 엄청난 것을 해줄 수 있는 여유나 형편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고작 ‘산책’이었다. 나는 그저 아이에게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려 노력했다. 원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원을 하면 나와 아이는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사계절 내내 동네를 돌며 놀이터 투어를 했다.


그 덕분인지 5살이 될 무렵, 아이에게는 나름 절친이라고 부를만한 친구 두 명이 생겼다. A는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게 된 친구였고, B는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였다. 딸아이는 두 친구 모두를 좋아했고, 각각 따로 만나서 아주 잘 놀았다. 그런데 A가 유치원에 들어온 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진급하며 다른 반이 되었지만, A와 B는 같은 반이 되었던 것이다. 그 무렵 내가 일을 시작하며 어울릴 시간도 현저히 줄어들었으니 A와 B가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셋이 어울리는 날이면, 아이는 걸핏하면 눈물 바람이었다.


엄마, 친구들이 나랑 안 놀아줘.


솔직히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밀어낸 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속이 상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안타까웠다. 더불어 회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아이의 칭얼거림을 온전히 받아내기가 힘겨웠다.


그 후 나는 의도적으로 셋이서 만나는 상황을 피했다. 일단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눈치를 챈 엄마에게는 넌지시 고민을 나누었고, 다행히 이해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와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음을. 친구가 지금 같이 놀지 않는다고 해서 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님을.


어느 순간,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아이뿐만 아니라 나도.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거절을 당한다고 해도, 매번 내가 아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피할 수는 없다는 걸 나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싫다면, 아이 스스로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걸. 아이가 단단해질 수 있도록 내가 그 꼴을 참고 봐야 한다는 걸.


어느 날 셋이 만나자는 제안을 내가 바로 수락하자, 내 고민을 들었던 엄마가 따로 나에게 ‘괜찮아?’라고 물었다. 괜스레 미안해졌다. 내가 감정적으로 서툴러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서. 그날도 우리 아이는 놀이터에서 몇 번이나 나에게 달려와 울었지만,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아이가 다시 친구들에게 다가가도록 응원했다.


어떤 것이 더 힘들었을까. 쪼르르 달려가 ‘얘들아, 우리 다 같이 놀자.’라고 말하며 상황을 쉽게 해결하고 싶은 내 마음을 억누르는 것과 아이가 몇 번이나 좌절하면서도 친구들에게 다가가 같이 놀자고 말하는 것 중에. 다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두 가지 노력 모두가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헤어지기 전, 우리 아이는 친구 두 명 모두와 손을 맞잡고 노래를 흥얼거렸으니까.


이제 조금만 더 크면 아이는 혼자서 놀이터에 나가 놀 것이다. ‘엄마, 나 놀고 올게.’하고 나가서는 해가 질 무렵이나 집으로 돌아오겠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고 할 때가 말이다. 그러니, 나도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다. 아이가 더 단단한 마음과 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끌어주는 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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