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엘리베이터 공사'에 대비하기
요즘 우리 가족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2주 전에 시작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사’이다. 구축 아파트의 특성상, 종종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는 일이 있었는데 작년부터 디자인을 고르는 등 슬슬 시동을 걸더니 한 동 한 동씩 공사가 시작됐다. 어떤 아파트들은 옥상끼리 연결되어 불편을 최소화하며 하기도 한다던데, 우리 아파트는 그런 구조가 아닌 모양이었다.
현재 18층에 거주 중인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멈추기 전에 이사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어찌 이사가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실제로 19층의 한 가구는 싼 값에 집을 처분하고 줄행랑(?)을 친 모양이었으나, 전세살이 중인 우리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뭔가에 쫓기는 듯 초조한 마음으로 디데이를 기다렸다.
워낙 단지가 큰 편인 데다, 그 순번이 가장 마지막이었던 우리 동은 처음 공사가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차례가 왔다. 그런데 또 이게 ‘매는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기다리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더라. 단지 내 놀이터만 나가도 이 공사로 인한 여러 고충과 애로사항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나마 아주 더울 때 공사가 걸리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인 것 같았다.
공사가 시작되기 한 주를 앞두고, 3층마다 의자가 하나씩 배치되더니 우리 동 앞의 주차 공간에는 ‘새 엘리베이터’로 보이는 거대한 물체가 들어왔다. 두둥- 나는 잽싸게 쿠팡에 들어가 더 알차게 채워놓을 식량이 없을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 중간에 급하게 떨어지면 큰일 날, 특히나 무거운 것(세제, 햇반 등)들을 마지막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첫 주, 날이 따듯해져서 하원 후 놀이터에서 간만에 친구들과 한바탕 논 아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울상이 되었다. 얼굴이 벌겋게 익을 정도로 신나게 놀았는데, 마지막 힘을 짜 내 18층까지 올라가야 하다니! 그 활동적인 아이가 ‘다른 날 또 놀자’는 친구에게 힘들어서 놀지 못하겠다고 했다니, 웃음이 났다.
퇴근 후 한 5층까지 걸어 올라가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다시 내려온 적도 있었다. 멀리 공용화장실까지 다녀왔다며 이 일을 다른 엄마에게 이야기했더니 근처에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관리사무소 화장실이 있단다. 이제야 귀중한 정보를 얻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아이가 급하다고 하지 않으니 어째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어르신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안부 인사처럼 ‘몇 층이신지, 많이 힘들지는 않은지’ 여쭙게 되더라. 17층의 할아버지는 통 안 보이시던데, 아마도 자녀분들이 잠시 모시고 간 모양이다. 그리고 택배들은 보통 1층 우편함 밑에 모여있는데, 가끔 고층에 너무 큰 택배가 도착하면 ‘어떻게 들고 가시려나’ 오지랖이 솔솔 피어올랐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웃을 생각하기에 이만한 행사가 또 없는 것 같다.
끼니는 냉동실에 있는 식량으로 볶아도 먹고, 쪄도 먹고, 구워도 먹으며 알차게 버티고 있다. 조금 반찬이 부실해도 상황이 이러니 모두가 군말 없이 먹는다. 내가 들고 나를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전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 좋다. 대충 한 끼를 때우는 일만으로도, 온 가족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면 조금 과한가?
그럼에도 5주나 되는 기간 동안 아주 장을 안 볼 수는 없어서 그런 날은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퇴근하면서 신선 채소 위주로 간단하게 장을 보고 배낭을 멘 채, 18층 계단을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다리 근력이 튼튼해지는 것만 같다. 그런데 왜 뱃살은 안 들어가는거지? 아이는 요즘 들어 새로운 집은 13층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 13층부터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공사 기간에 5월 황금연휴가 들어있었다. 빨간 날에도 종종 출근을 하는 남편과 일정이 딱 맞는 연휴라 어디라도 좀 가고 싶었는데, 캐리어에 짐을 가득 챙겨 행군까지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 나, 남편 각자 간단하게만 짐을 싸 1박 2일 글램핑만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오려 배낭에 짐을 챙기는데, 아이가 정말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며 말한다.
엄마, 우리 이제 집에 가면 18층까지 또 걸어 올라가야 해요.
한 달 가까이 좋은 아파트에 살았으면 하지 않았을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조금은 즐거운 마음이 든다. 달력에 X표시를 해가며 ‘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자전거 타기’를 고대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중에 아이와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겨 기쁘다고 생각한다. 이 긴 공사가 끝나는 날, 우리 가족은 아마도 서로를 꼭 안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