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시면 오지랖이 발동해요
최근 같이 일하는 직원 중 하나가 연애를 시작했단다. 왠지 자꾸 이뻐진다 싶었는데, 영락없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연애’가 그 답이었다. 30대 중반인 직장동료는 수줍은 듯 그 사실을 고백했는데,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껴본 지 십수 년이 넘은 아줌마는 주책맞게 마음이 다 설레더라.
은호씨는 남편의 어떤 점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어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료가 한 질문이다. 아무래도 결혼 적령기에 서로의 부모님 소개로 만나다 보니, 결혼 이야기도 빨리 나오는 모양이었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 하나, 자꾸 결혼 이야기가 나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일단은 1년, 적어도 사계절은 상대방을 지켜보고 연애를 좀 더 즐기라는 오지랖 섞인 충고가 먼저 나왔다.
나와 남편의 연애 기간은 2년 정도였다. 그중 1년은 결혼 준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내가 결혼을 결심한 것은 사귄 지 1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계속 고민을 하긴 했다. ‘식장에 들어서기까지는 모른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뭐 내 남편에게 엄청난 것이 있어서 결혼을 결심까지 했겠는가! 내가 또 뭐라고.
그럼에도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꼭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생활력’인 것 같다. 남편은 고교 졸업을 한 19살 때부터 집에서 나와 자취와 회사 숙소를 전전하며 살았는데, 그 행보가 소심한 나에게는 무척이나 ‘독립적’으로 보였다. 경제적으로 조금 무관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는 아마도 조금은 든든한 사람을 원했으리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난 얼굴도 봤다.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니다’고들 말하지만, ‘얼굴’도 결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조각같이 잘생길 필요는 없다. 다만, 화가 나는 그 순간에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더 화가 나지는 않을 정도’만 생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 남편은 조금 불쌍하게 생긴 편인데, 이 얼굴은 내가 열받는 순간에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언젠가 희대의 매력녀인 이효리가 남편 이상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놈이 그놈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대목에서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은 ‘자신에게만 맞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세상에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우리 집에 있는 내 남편만 해도 10년을 같이 살았건만 진짜 맞는 게 하나 없다.
난 늘 춥다고 하고, 그는 늘 덥다고 한다. 나는 내향형이고, 그는 외향형이다. 나는 J이고, 그는 P이다. 나는 면을 좋아하고, 그는 밥을 좋아한다.(연애할 때 파스타 잘 먹어놓고선!) 정말이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입이 다 아플 정도다. 그러니까 나와 운명의 단짝처럼 모든 것이 딱 맞는 남편은 거의 ‘허황된 꿈’에 가깝다. 아니라고?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상대방이 당신에게 다 맞추고 있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거의 99프로를 맞추고 있다고 해도 괜찮다. 당신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않다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속이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당신이 잊지만 않으면 좋겠다. 둘 다, 각자 서로에게 맞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것도 괜찮다. 나만큼 상대방도 맞추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사실, 결혼의 조건은 바로 여기 있다. ‘서로를 존중하기를 멈추지 않겠는가?’ 그리고 ‘상대방과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맞출 준비가 되었는가?’하는 것이다. ‘맞출 수 있는 것’이 큰 틀에서 나의 가치관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여야 한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에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감은 덤이다.
삶은 계속 변화한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할 수도 있고, 큰 병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된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 또 맞추어야 한다.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나이 들어가면 신경 써야 하고, 고려해야 할 부분은 늘어난다. 우리는 또다시 위기 상황을 대비하듯,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주 사정이 있어 한동안 가지 못했던 시댁을 다녀왔다. 아직 변변한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한 우리에게 어머니는 그래도 ‘사이좋게 지내주어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다. 지난달에 집 이야기를 하다 살짝 다툴 뻔했다는 걸 굳이 상기시켜 드릴 필요는 없겠지. 그저 이렇게 투닥거리면서 서로를 알아가다가 70대 노인이 되어도 지금처럼 손잡고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