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1 관계 맺기에 빠진 엄마들

'OO엄마'들의 관계에서 살아남기

by 은호씨

엄마가 된 후, 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 친구 엄마’와의 관계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는 편이 아니어서 출산을 하기 전부터 이 관계를 염려했다. 그래서 조리원을 고를 때도, 각자의 방에서 수유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예민한 시기에 다른 엄마들과의 만남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흔한 조.동 하나 없이 육아를 시작한 나였지만,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의 대화는 얼마나 즐거운가! 게다가 어릴 때는 몇 달 차이도 꽤 커서, 개월 수가 비슷한 아이 엄마와의 대화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지금의 육아 고민에 대해서는 토론을 하고, 미리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대비를 했다.


그중에는 인간적으로 욕심이 나는 사람도 있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알게 된 엄마 중 하나는 동갑인 데다 성격도 무척 시원시원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이 너무 괜찮았다. 그녀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한동안 의식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심지어 그때 만삭이었단다. 나는 이야기를 듣다 눈물이 다 났는데, 그 모든 시간을 버텨낸 이 엄마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엄마도 있었다. 유아기에 다녔던 문화센터에서 만났던 엄마 중 한 분은 매우 여성여성한 분이었다. 집에 초대를 해주셔서 딱 한 번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나 모든 것들이 너무도 우아해(?)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분이랄까. 그날 이후 그분과는 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문화센터, 유치원과 같은 기관을 거치면서 여러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해 보니, 이 관계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냥 ‘나’와 ‘상대방’의 욕구나 성향이 맞아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아이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그 사람이 좋아도, 아이들끼리의 관계가 무너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계가 되고 만다. 또한, 엄마들은 무조건 내 아이가 최우선이므로 서로가 정한 암묵적인 룰이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안다. 일정한 선을 지켜야 사달이 나지 않는다는 걸.


사실 ‘나’라는 사람은 더 이상의 인간관계를 늘리기엔 벅찬 인물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관계를 죽을 때까지 잘 가져가기에도 버거운데, 내가 아닌 ‘내 아이를 위해’ 또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도 ‘아주 잘’ 말이다. 게다가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인데,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순 없는 일이 아닌가.


결국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재미’가 있다면 괜찮으니까.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직업이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르고, 부부싸움의 이유나 패턴(왜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도 달랐다. 나는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치관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집도 그들에게는 특이하거나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집안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관계도 우리네 삶에서 ‘다름’을 배우는 과정인가 보다. 하지만 ‘다른 것’ 일뿐이지,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의 가정이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일’에는 진심이니, 우리는 어쩌면 같은 목표를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관계를 계속 맺을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0 여행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