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요! 제가 그렇습니다.
최근 회사에서 누군가 ‘만약에 놀이’를 시작했다. 주제는 ‘내일 출발하는 제주도 여행권이 생긴다면, 바로 가겠는가?’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뭘 물어? 당연히 가야지!’ 쪽이었고, 한두 명은 ‘일은?’, ‘비용은?’ 등의 세부 조건을 물었다. 모든 사람이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은 손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질문이 당도하자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나도 안다. 누군가에겐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할지를. 하지만 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즐겁게 간 여행지에서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바로 집에 오고 싶어지더라. 심지어 일주일의 긴 휴가를 받고 간 신혼여행에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초반에는 열이 나며 아팠고, 후반에는 복귀하면 회사와 각 집안에 돌릴 적당한 선물을 고르느라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물론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다. 발리 해변가에서 일몰을 보며 저녁식사를 할 때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엄마와 통화하며, ‘내가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때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죄책감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어쩐지 내가 누리는 것들이 과분하여 너무 호사같이 느껴졌달까.
처음에는 그저 어색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온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없다. 아주 어렸을 때 당시 외할머니댁이 있던 부산에서 물놀이를 한 것도 여행으로 친다면 그 이후로는 없다. 적어도 아버지의 주도하에 다섯 식구가 다 같이 짐을 싸서 어딘가에 놀러 가 잠을 자고, 즐긴 기억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잠시 멈추고 힐링이나 즐길 목적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 적이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의 평생소원이 ‘가족 여행’이었을까. 난 지금은 남편이 된 이 사람과 연애를 할 20대 후반 시절에도, 전혀 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훗날을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연애시절 남편은 날 계몽(!)시켰다. 소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어 돼지고기가 더 맛있다는 나를 부득불 횡성에 데려가 먹이고, 토요 근무 후 퇴근한 나를 데리고 갑자기 바다를 보러 휑 떠나기도 했다. 예정에 없던 여행이라니, 내 평생 그런 일은 전무후무했다.
아마도 남편은 내 반응들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 뭐가 좋은 줄도 몰랐던 나는 소고기를 입에 넣고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신기해 호들갑을 떨었고, 석양 지는 바닷가를 맨발로 걸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했으니까. 그래서 남편은 내가 못해본 것일 뿐이지, 앞으로 하면 잘할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남편이 정말 그럴 줄 알고 나와 결혼을 한 거라면, 난 사기 결혼을 한 셈이 된다. 난 그 경험들이 소중하긴 했어도 애초에 여행을 즐기는 성격이 아닌 것 같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운운한 것도 어딘가로 떠나서 마주할 다양한 변수를 맞닥뜨리는 것보다 ‘안전지대’인 집에 있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나는 꼭 여행 후의 일을 미리 걱정한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해야 할 수많은 빨래와 연차 후 복귀했을 때 쌓여있을 일거리 등. 그때그때 미루지 않고 일처리를 하는 나로서는, 혹시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생길까 전전긍긍한다.
얼마나 미련한 소린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렇게 여행이 힘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아이의 경험이 늘어난다!’는 의무감으로 매년 여행길에 오르긴 했다. 여기엔 홀로 드라이브하며 어딘가로 훌훌 떠나는 게 낙이었던 남편에 대한 측은함도 한몫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짬을 늘려 작년엔 드디어 2박 3일 여행에도 성공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여행이 주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스스로 여행계획을 짤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결코 그럴 수 없을 테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남편이 노래노래를 부르는 ‘해외여행’이라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날, 나는 어쩌면 엄청난 도전에 성공한 양 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