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경제 교육의 상관관계
언젠가 육아 전문가 ‘조선미 박사’가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결핍이 없어서, 보상을 통한 훈육’이 효과가 거의 없다고. 이 말을 듣고 나도 느낀 바가 많았다. 엄마 아빠가 가려서 선물을 사 주어도,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는 아이 선물이 넘쳐났다. 고모, 이모, 양가 할머니들의 선물까지. 아이는 행복해했지만, 나는 내심 걱정스러웠다.
삼 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부족한 것 투성이로 자란 나는,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 딸아이가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마 전 엄마는 나에게 ‘욕심이 없어서 그 모양 그 꼴로 산다’는 걱정 어린 푸념을 하셨는데(이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아팠다.), 나의 어린 시절이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환경’이었다는 걸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미치도록 갖고 싶은 것이 있다 한들, 살 수 없는 형편이라 엄마 속만 상하게 하는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쉽게 포기하는 법을 터득했다.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니, 아예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으로 날 훈련 시켰다고 하면 맞으려나.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나, 먹을 줄 안다고. 욕심도 부려본 놈이 부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요즘 부모들은 내 자식은 절대 ‘그런 고생은 시키지 않겠다’고 어떻게든 열심히 돈을 벌어 명품도 사서 입힌다는데, 나에게는 그럴만한 재주가 없었다. 다행히 남편과도 생각이 얼추 맞아, 나름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혼자서 살아야 할 각박한 세상이 아닌가!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좌절이나 고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일환으로 아이가 특별한 날에 선물을 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부터, 그날 이외에는 뭔가를 사주는 걸 의도적으로 자제했다. 작년에는 생일 선물도 ‘엄마 선물’ 따로, ‘아빠 선물’ 따로를 외치기에 기가 좀 찼다. 관련해서 조금 훈육을 했더니 이모나 다른 어른들이 선물을 주었을 때, 내 눈치를 또 보더라. 그 순간엔 살짝 ‘잘못하고 있나.’ 싶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그동안 야금야금 모은 돈으로 뭔가를 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재작년인가 어른들께 용돈을 받으면 조금씩 모아보라고 작은 저금통을 사 주었는데, 돈 세는 법을 가르쳐주며 보니 5만원이 조금 넘게 모였더라. 주말의 일정상 문방구에 들를 예정이어서, 나는 아이가 자기 지갑에 돈을 고이 접어 챙기는 것도 두고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모임이 취소된 게 화근이었다. 아이는 문화센터를 마치고 마트에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겠다고 난리였다. 딱히 갖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것을 사는 행위’를 하고 싶어 보였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정가보다 싼 인터넷 세상에서만 장난감을 사는 나였지만, ‘약속’을 운운하는 아이를 당할 수는 없었다.
1층 장난감 매장을 한 구역씩 돌 때마다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들이 나타났다. 나는 적어도 이 기회가 여러 조건을 비교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는 훈련이 되길 바랐다. 1시간 남짓 그곳에서 아이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살 수 없는 장난감은 탈락시키고, 원치 않는 캐릭터의 장난감은 제외시켰다. 결국 한 장난감이 최종 낙찰되었는데, 가격은 무려 34,900원이었다.
첫 경제 교육(?)의 비용으로는 꽤 크기도 했고, 그 장난감이 매우 많은 수작업과 엄청난 역할 놀이를 불러올 것 같아서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이가 가진 돈에서 해당 금액을 따로 빼게 하고, 이 장난감을 사려면 이만큼의 돈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걸 여러 번 상기시켰다. 아이는 양자택일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장난감을 선택했다.
주말 낮 시간의 마트였기에, 계산하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는 세일 특가로 살 수 있는 양파와 느타리버섯은 포기하고, 장난감만 계산하기 위해 아이에게 ‘34,900원’을 현금으로 건넸다. 직접 자기 손으로 계산을 해 보는 경험이 중요할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한 계산원분은 우리가 조금 귀찮으실 수 있었을 텐데, 상황을 이해하신 듯 ‘네 돈으로 사는 거냐’며 칭찬도 해주셨다.
아주머니의 따듯한 말씀에도 ‘돈을 다시는 못 모을지 모른다.’며 울먹이는 아이를 얼른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는 장난감을 꼭 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지진 않았으면 좋겠고, 장난감은 갖고 싶으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버거웠나 보다. 긴 시간 마트에서의 실랑이에 나 또한 지쳤으나, 그래도 아이가 뭔가를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하려는 찰나.
나도 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뭔가를 사려면 그만큼의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가르치고자 했던 나의 꿈은 사치였나 보다. 아이의 ‘카드 타령’에 잠시 웃음이 났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제 카드로 결제를 하는 원리와 신용이 있어야 발급받는 ‘그놈의 신용카드’를 결코 막 써서는 안 된다는 걸 또 가르쳐야 하는 거겠지? 이 끝나지 않는 가르침이 바로 육아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