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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저는 관성과 싸우는 중입니다.

더 쉬운 길을 알면서도 못 본 척하기

by 은호씨

‘7세 고시’라는 말도 있는 요즘, 우리 집의 7세는 노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그래도 어렸을 때는 많이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긴 했지만, 취학을 앞두고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꼭 학습이 아니라, 예체능이라도 사교육에 발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슬쩍 보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추가로 학원을 보내는 형국이었다.


뭐라도 보내보려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으나, 아이는 엄마가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차선책으로 6세부터 시작했던 문화센터를 계속 다니고 있다. 이는 근처 마트에서 토요일마다 하는 것으로, ‘과학 수업’을 빙자한 ‘만들기 수업’에 가깝다.


사실 이조차도 쉽지 않았다. 유치원은 잘 가는 아이가 문화센터만 가면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기에 정말 암담하더라. 한 살 어린 동생들도 듣는 수업인데,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을 진짜 꾹 참았다.(5세 때, 한번 취소한 이력이 있다.) 몇 번씩이나 초등학교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우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되어서 아주 혼이 났다.


나 또한 매주 토요일마다 더 자고 싶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와 문화센터 출석 도장을 찍는 것이 어찌 쉬웠으랴. 하지만 나는 이를 더 악물었다. 첫 학기에 12회 중 10회를 문 앞에서 망부석처럼 대기하며 간신히 적응을 시켰고, 다행히 지금은 즐겁게 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한 단계를 넘겼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이제는 가족 행사로 문화센터를 빠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는 그날에 무슨 수업을 했는지 궁금해하며 챙기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플라스틱 컵과 불이 들어오는 전등으로 일명 ‘쥐불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었더라. 컵에는 잔뜩 본인이 좋아하는 리본, 별, 여자친구를 그렸다. 참으로 예쁜 쓰레기구나.


아이는 자기가 컵에 무슨 그림을 그렸는지 말하고 싶고, 나는 그래도 뭐라도 배웠으면 한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아이는 뭔지도 모르면서 방금 전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기억해, 종이를 보며 설명해 준다. 뭐 좀 말이 안 되고 그래도, 그래. 이거면 됐어. 토요일 아침잠과 ‘관성’을 맞바꿨으면, 나름 괜찮은 거래다.


그러고 보면, 육아는 ‘관성과 맞서 싸우는 일’인 것 같다.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그 길이 더 편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러면 안 된다며 나를 채찍질하는 일. 그냥 아기 때처럼 대신 다 해주고 싶고, 그렇게 하면 더 쉽게 끝날 것을 알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자꾸 나를 돌아보는 일. 그게 바로 육아란 생각이 든다.


아이가 혼자 먹게 하여 질질 흘리는 것을 나중에 닦아야 하는 것보다, 내가 떠먹이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옷을 입혀달라는 아이에게 이제는 스스로 입어야 한다며 입씨름하며 느린 손으로 지퍼를 잠그게 하는 것보다, 내가 휙 입히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매일같이 하루 한 장해야 하는 한글 공부를 붙잡고 시키는 것보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어주는 것이 내 몸은 훨씬 편할 것이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를 위해 그토록 많은 실랑이를 벌이고 시행착오를 기꺼이 겪는 일. 그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다. 한 해 한 해 키우면서 느끼는 바지만, 우리 아이는 생각보다 적응이 느린 편인 것 같다. 하도 ‘내가 내가’를 외치기에, 뭐든 혼자 잘 해내서 ‘손 안 대고 코를 풀 수 있을 것이다.’는 나의 기대는 저만치 날아간 지 오래다.


그렇게 제대로 못 걸을 때는 혼자 걷겠다고 난리더니, 한창 자라서는 안아달라고 용을 쓰던 아이. 나는 당시 그저 안아주면 빨리 끝난다는 생각에, 자주 관성에 지고 말았다. 결국 아이 18kg 즈음, 허리에 벼락을 맞고 2달간 한의원 신세를 졌었다. 저질 체력이 그나마 ‘걷기 독립’에 도움이 된 셈이었다.


성질 급한 엄마는 오늘도 아이가 원하는 바를 바로 해주려다 멈칫한다.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나는 또다시 혼자 한 다짐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는 마음도 단단히 몸도 단단히 키워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예뻐할 수 있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었다. 오늘, 조금 ‘관성’에 몸이 쏠려서 중심을 잃었더라도 내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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