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도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나는 굉장히 입이 짧은 아이였다. 친구들과 노느라 밥때가 한참 지나도, 손을 덜덜 떨면서도 밥은 잘 안 먹었다고 한다. 이런 나를 위해 우리 엄마는 손톱만 하게 주먹밥을 싸서, 버스 안 이동하는 와중에 입에까지 넣어주었다고 한다. 내가 뭐든지 잘 먹는 딸아이를 낳자, 우리 엄마는 몇 번이나 ‘너는 그랬다’며 생색을 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도 참 나 키우기 어려웠겠다.
자라면서 느꼈는데 나는 식탐도 많지 않았다. 남들은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먹어보고 싶어 안달을 내는데, 나는 딱히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원래 메뉴가 충분히 괜찮았는데, 굳이 이상한 조합을 만들어 내는 이유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해도, 그걸 애초에 먹지 않으면 내가 그 맛을 모르고 그러면 ‘먹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을 테니 그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식사를 대체할 캡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행위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서 의미가 있었는데, 회사에서의 식사는 조금 불편했다. 적어도 밥 먹는 시간만큼은 혼자 편하게 쉬는 시간이고 싶었지만, 한 팀의 막내는 식당 예약부터 젓가락 놓기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30대까지는 이런 식습관이 체력으로 이어지진 않았던 것 같다. 먹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깡다구는 좀 있었다고나 할까. 1년 365일, 골골 대면서도 큰 병치레를 하지 않은 것이 그 근거라고 여겼다. 상견례에서 아버님이 ‘애는 낳겠냐.’며 한마디 하셨다는 걸 알고 나서는, 콧방귀를 뀌며 결혼하자마자 ‘손주를 안겨드리겠노라.’ 자만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워킹맘이 된 지금,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약골이다. 주 5일의 출근, 놀이터를 가로질러 전력질주를 해야 마지막 하원을 면할 수 있는 한 아이의 엄마는 항상 그 하루만 산다. 아이스 카페라테로 수혈을 하고, 야채 김밥으로 연명한다. 나의 열정과 총기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체력은 저 밑바닥을 찍었다.
젊을 때 관리해라. 건강할 때 운동해라. 어른들의 말씀은 결코 틀린 적이 없다. 체력의 한계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업무 실수는 그나마 낫다. 해결책을 찾아 고치고, 엑셀 파일의 수치는 수정하고, ‘죄송하다.’는 메일로 어떻게든 봉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매우 창피하다. 지난주, 나는 한 차례의 송금 실수로 거의 오줌을 지릴 뻔했다.)
더 큰 문제는 아이의 양육에 관한 것이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나 규칙, 아이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들이 계속 무너져 내린다. 내가 ‘줏대’를 지켜야 하는데, 그놈의 것도 바로 서 버티고 있으려면 힘이 든다. 자꾸 지쳐서 숨을 헐떡이다 보니, 마지막엔 백기를 들고 마는 것이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아직은 어린 나이기에, 무엇이 좋고 나쁨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기에, 부모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어느 정도 규율과 규칙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습관은 평생을 좌우할 수 있으므로, 첫 단추가 매우 중요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체력이 달리니 자꾸만 꾀가 생긴다. ‘그래, 이 정도는 허용해 줄 수 있잖아? 남들도 다 하는데?’
최근 1학년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하나가 아들의 친구 문제에 대해서 잘 알아보지 않고, 자기 아이만 혼낸 뒤 자책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 앞선 상황까지 알아보고 두 아이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야 맞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엄마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녀도 무엇이 가장 현명한 대처인지 몰랐을 리 없다. 다만, 그럴 여유가 없었을 뿐. 그저 내 아이를 다그치고 고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 그렇게 하게 된 것이다. 나 또한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없다. 왜냐. 나는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럴 체력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엄마들이여, 운동을 해야 한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내 아이를 위해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물론 너무 귀찮다. 그래서 나는 최근 그냥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시간을 꾸역꾸역 내야 하고, 무거운 몸은 말을 잘 안 듣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결국 내 아이를 위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