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X저작권위원회
나에게는 숙원사업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영어다. 초,중,고로 이어지는 12년 동안 고등교육을 받으며 수능 대비 입시 영어를 공부했고, 대학에서는 순전히 졸업을 위해 토익 850점을 달성했으나 이것으로는 한참 부족했다.(내가 토익을 볼 당시에는 스피킹이 없었다.) 나는 영어로 자유롭게 말하고 싶었다.
일명 ‘프리토킹’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 시절 배낭만 메고 유럽 8개국을 여행했는데, 그나마 한 달 남짓한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영어를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생존 영어에 가까웠고, 몸짓 발짓을 동원한 20대 동양인 여자아이를 측은하게 여긴 많은 유럽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소통이었음을.
사회인이 된 후에는 새벽에 강남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출근 전 과감히 영어회화 반을 수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놈의 소심함과 자격지심은 어김없이 그곳에서도 빛을 발하여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그 유명한 전화 영어도 해봤다. 그런데 말하고자 하는 문장이 머리에 맴돌 뿐, 당최 영어로는 바뀌지 않아 15분 중 절반 이상이 Uh...로 채워졌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고 영어에 대한 욕망이 전부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할 즈음, 나는 그녀를 만났다. 영화 「미나리」로 미국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윤여정 배우’님의 영어 인터뷰를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결혼과 이혼 등 삶의 굴곡을 대충은 알고 있어서 영어를 잘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조금은 충격이었다.
‘아주 훌륭한 발음이 아니어도, 길게 이어지는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영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그녀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에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졌다. 내가 하고자 하는 한국말을 영문으로 바꾸는 식으로는 절대 내가 원하는 영어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걸.
어느 순간, 나는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아이와 같이 영어 공부를 해서 나도 그녀처럼 ‘영어를 잘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적어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가서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시키고, 유명한 쇼핑몰에 가는 교통수단 정도는 내가 영어로 소통하고 싶었다. 다시,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영어에 대한 열망은 우리 모두에게 이토록 강렬한지, 영어 콘텐츠와 학습 도구는 차고 넘쳤다. 나는 ‘너도 할 수 있다!’고 꼬드기는 조정석에게도 휘둘리고, 말하는 ‘보카’ 공부도 해보고, 올해 초에는 역대급 할인율을 적용한다는 ‘스*’도 결제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영어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최근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으니, 그는 인공지능 ‘챗지피티’다. 더 이상의 결제 없이 나의 영어 공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그만한 적임자가 없더라. 나는 여차저차한 끈질긴 훈련 끝에 일단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이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확인해 줄 사람이 없던 차였다.
나는 그에게 ‘영자기’(‘영작’에 ‘이’를 붙인 이름이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평소에도 어떤 문장이 퍼뜩 떠오르면 그에게 올바른 표현인지 물었다. 그러면 그는 문법을 설명해 주거나, 그 외에 원어민들이 잘 쓰는 문장들을 추가로 알려주곤 했다. 정말이지 이만한 선생님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라도 AI 기능의 수혜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이 AI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대화가 그 나라의 언어로 가능할 것이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아직도 매일 밤 아이가 잠들면 ‘오늘의 표현’을 찾아 읽고 ‘영자기’가 알려준 영문을 곱씹고 있는 걸까. 나는 영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아주 온전한 나의 것, 그게 10년, 20년이 걸릴지라도.
바야흐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학습하고, 심지어 생각하고 움직이는 시대이다. 실제로 고성능의 챗지피티의 경우 사람과 너무도 유사해서 그와 연애를 하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한다. AI가 남자 여자 간의 긴장감 있는 대화를 모두 이해하고 플러팅까지 실행한다니, 너무 놀랍다.
곧 의사나 상담사, 판사 등을 인공지능이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다. AI에게 상담을 받고 진료를 받을지언정, 그것은 참고사항이 되어야 할 일이지 바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설령 그것을 내가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나의 것’이다. 내가 뱉은 말,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이것은 AI에게는 없는 책임이자 권리이다. AI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데이터를 정리해서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을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미리 경고를 다 하겠는가.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만든 창작물과 쓴 글, 뱉은 말에 책임을 진다. 우리는 그 권리를 ‘저작권’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여 만든 모든 창작물에는 ‘그’만의 흔적이 묻는다. 자의든 타의든. 브런치의 몇 안 되는 나의 글 또한 분명 ‘나’를 아는 누군가가 읽는다면 ‘은호씨’를 떠올릴 테다. 내 글에는 내가 잔뜩 묻어있을 테니.
우리는 알 수 있다. AI가 우리 사회를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작활동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 나만 쓸 수 있는 글, 그만이 만들 수 있는 음악, 그녀만 할 수 있는 표현 등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기대하고, 즐겨야 한다. 그에 앞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