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함께 이룬 작가의 꿈,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내가 처음 ‘브런치’에 도전한 건, 아주 한참 전의 일이었다. 국문과를 졸업했다고, 남들이 몇 번 자소서를 부탁했다고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신혼 초에 괜히 감상에 젖어, 그냥 딱히 주제도 없이 한번 끄적여 작가 신청을 했는데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역시 내가 한참 부족하구나! 실망한 나는 한동안 이쪽은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삶을 꾸려나갔다.
사실 ‘삶을 꾸리다.’라는 표현은 나의 결혼 이후의 일상을 그나마 순화한 표현에 가깝다. 2년간의 연애를 했음에도 살을 부대끼고 사는 삶은 전혀(!) 다른 장르의 것이었고, 신혼 기간은 ‘남편어’를 해석하는 ‘제8(?)외국어 자격증’을 취득하는 시간이었으며, 남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인 임신이 우리에겐 참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은 나는 그 ‘육아’에 매달렸다. ‘아내’보다는 ‘엄마’가 더 되고 싶었을 정도로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나에게 돌까지의 1년은 평생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호르몬으로 인한 산후우울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롯이 내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 ‘나를 닮은 작은 핏덩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낮았던 내 ‘자존감’을 잠시 높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나의 ‘소중한 존재’를 위해서, 항상 완벽해야 했다. 내가 만든 이유식에는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어야 했고, 내가 사는 아이 옷은 좋은 면 소재여야 했고, 내가 고르는 책들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되어야 했다. 나는 육아서적을 정독하며 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지만, 내가 열심히 준비한 무엇을 아이가 거부한다는 사실만으로 화를 내는 ‘내 모습’을 직면한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아무리 좋은 옷도 내게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잖아.
‘완벽’이 절대 ‘최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을 즈음, 나는 역대급 우울과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의 나는, 갑자기 워킹맘이 되어 출·퇴근을 반복하며 육체적, 정신적인 고비를 맞이했던 것 같다. 나는 통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좀비처럼 웹 서핑을 하다 하다, 결국은 다시 브런치에 가 닿았다. 나를 위로할 글을 찾아서.
나는 무언가 잘못한 게 있으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보다 한 장짜리 반성문을 쓰는 게 더 쉬운 사람이었다. 진짜 힘들어 죽겠는데, 오히려 말로 하면 눈물만 날 뿐 더 답답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상황에서 ‘글쓰기’는 하늘에서 내려준 마지막 동아줄 같았다. 나는 써야 했다. 그게 무엇이라도.
그동안 브런치를 통해 엄청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기까지 망설임의 시간도 있었다. 내 글은 ‘완벽’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절박한 마음을 담아, 나는 용기를 냈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내게 도움이 된다면, 그저 그 자체로 내게는 ‘최선’이 된다는 걸.
그렇게 적어도 매주 1편씩, 한글 문서에 타닥타닥 나의 일상에 대한 글을 먼저 쓴다. 그 후 브런치 플랫폼에 옮기고 튀어나온 부분을 고쳐 쓰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풀어서 글로 쓰다 보면 뭔가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감정을 다듬고 정리하여 ‘배출’하는 것만 같달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이 점차 나의 일상이 되어간다.
나는 작가는 아니다. ‘작가(作家)’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작가라니, 택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내 브런치에서 내 삶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글이 되니 내 글의 ‘작가’는 누가 뭐래도 ‘나’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