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아, 우리 남편아. 힘내라
우리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감정이 널을 뛰는 나에 비해, 그는 무던한 편이라 애정 표현도 거의 없다. 몸무게는 조금 많이 먹은 날은 3자리, 조깅을 자주 하는 주에는 2자리를 왔다 갔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 만큼 타고난 근육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밖에서 일을 하기에 살이 많이 타서, 흡사 흑곰처럼 보인다. 반면 속살은 매우 희어서, 하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딸에 대한 지분을 내가 온전히 주장하기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자기혐오가 심한 상태였다. 누가 ‘내가 좋다’고 하면 ‘제가 왜 좋아요?’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아마도 그 이면엔 ‘누군가 제발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리라. 다른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면, 나도 나를 조금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겼을까.
소개팅을 하고 몇 번의 애프터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그가 자꾸만 좋아졌다. 그런데 그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눈을 반짝일 때는 분명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주중엔 감감무소식이었다. 고작 몇 번 안 되는 내 연애 데이터에 따르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면 내가 점심으로 뭘 먹는지, 퇴근은 몇 시에 하는지 궁금할 법도 한데 말이지.
나는 결국 안달이 났다.(진짜 예나 지금이나 성격 급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는 이 사람이 너무 좋아질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으면 나는 또 상처를 받을 게 아닌가! 나는 냅다 질러 버렸다.
나랑 사귈 게 아니면, 우리 그만해요!
먼 훗날 남편이 된 그는 뭘 하지도 않았는데, 그만하자는 내가 매우 황당했다고 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의 속도가 느린 그와, 모든 것의 속도가 빠른 나는 이때도 참 안 맞았다. 맞지 않은 것 투성이인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가정을 이루었다.
지금도 약간 남아있지만, 나는 결혼 전에는 좀 더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뭐랄까. 남들에게 괜찮아 보이는 직업, 남들이 다 하는 취미,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까. 하지만 남편은 꼭 이렇게 되물었다. 남들 말고, 너.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류의 질문에 항상 바로 대답하지 못했는데, 애초에 나는 ‘내 생각’을 주장하고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연습이 덜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들은 다 하는 연락을 왜 당신은 못하냐며 다그치는 나에게, 그는 조용히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냈다. 그가 일하는 현장에 가 본 그날, 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만 좋으면 상관없어. 그래도 괜찮아.
남편은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한 번씩 길을 잃지만 이 사람 덕분에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가 제대로 가스라이팅 당한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웃음이 난다. 오늘, 내가 거의 러브레터에 가까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힘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도, 남편은 이 글을 읽지도 않을 테지만! 우리에겐 남들처럼 수많은 부부싸움의 스토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항상 나는 당신 편에 있겠다고. 40대 중반, 회사에서의 입지가 흔들리며 갈대처럼 나부끼는 그대가 소파에 붙어 핸드폰 게임만 하고 있더라도 나는 당신을 믿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글 번호가 20번을 넘어갔을 때, 너무도 답답하여 온라인 세상에 글을 좀 쓰고 있노라고 고백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 글의 수많은 소재가 될 사람에게 동의는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플랫폼인지, 무슨 내용의 글인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글을 쓰면 내 기분이 나아지는지 물어온다. 그게 너에게 의미가 있어? 그럼 됐어.
10년 전의 나였다면, 내가 하는 일에 이렇게 관심이 없는 건 ‘사랑이 아니야!!’라며 울부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도 하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제껏 남편에게 배운 것을 이렇게 써먹어 보자.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정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