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행복했던 조금 다른 이유
최근 아이의 친한 친구에게 동생이 태어났다. 우리 중 젊은 축에 속했던 이 엄마는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며 볼을 발그레 붉혔다. 시험관으로 간신히 아이를 얻은 나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날이 찾아오지 않아 임테기를 해보고 두 줄이 뜨는 그 유명한 클리셰가 마냥 부러웠다.
6살 터울이라니, 많은 것도 같지만 또 많으면 좀 어떤가! 첫째는 이제 엄마의 든든한 조수가 되어줄 것이다. 막 언니가 된 아이는 꼬물거리는 동생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부러워하는 친구들 앞에서 마치 엄청난 보물을 혼자 가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굴었다.
우리 딸내미는 아기를 안아보는 나를 부러운 듯 잠시 쳐다보았으나, 그것은 본인도 아기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던 ‘경험’에 대한 부러움이었을 뿐. 곧 엄마를 향해 눈을 흘긴다. 자기는 동생 필요 없으니, 절대 낳지 말란다. 에이, 요놈아. 낳고 싶어도 낳지도 못해!
오랜만에 백일도 안된 신생아를 보고 있자니, 그 시절의 육아가 떠오른다. 분유를 타서 주니, 예의 ‘그 젖 먹던 힘’을 다 해 빨아댄다. 자고 있는 얼굴만 보고 있어도, 정화가 되는 기분이다. 아기에게서는 그 어디서도 팔지 않는 꼬순내가 난다. 딸아이의 이맘때가 계속 떠오른다.
이제 막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는 언제 다 키우냐며 하소연을 했다.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단다. 외향인인 그녀는 벌써부터 좀이 쑤시다며, 신생아를 데리고 외출을 해 다른 집에 온 터였다. 우리는 갓 50일이 넘은 아기가 감기라도 걸릴까, 종종거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육아가 어렵지 않았던 이유는 내향인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첫 아이였던만큼 100일까지는 아이를 데리고 밖을 나가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나를 가둬두었다. 그런데 그 ‘갇혀 있음’이 나는 좋았다. 아기가 어리다는 사실은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잡았다가도 취소가 되면 묘하게 기뻤다. 친구가 너무 미안해하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했다. 난 집에서도 할 일이 너무 많았다. 20대에는 그저 그게 좋아서 10일 정도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지금도 잠깐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도 나는 밖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린 적이 있다. 집에 있었더라도 내가 편하게 있지 못했던 날은 ‘집에서 쉬는 것’으로 치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내향인이 쓴 글이었다. 댓글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들이 더 놀라웠다. 참 이렇게나 사람은 모두가 다르구나.
나는 종종 스타필드와 같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영혼을 뺏는 디멘터(feat. 해리포터)에게 당한 사람처럼 허우적대곤 했다. 외향성이 강한 남편은 신나서 이리저리 구경을 해대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보면 그걸로 끝이었다. 남편은, 그렇게 늘어져 있다가도 집에만 오면 쌩쌩해지는 내가 얄미웠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나 또한, 집에만 오면 늘어져 없는 사람 취급을 해달라고 하는 남편이 얼마간 신기했다. 하지만 에너지를 얻는 곳이 다를 뿐이었다. 그것을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바깥 활동을 나가면 아빠가 아이를 마크하고, 집에서는 전적으로 내가 아이를 맡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외향적’인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여기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안달을 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내향적’인 것을 필요로 하는, 마음껏 ‘내향인’이어도 되는 그 육아의 시간을 오히려 편해하고 행복해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