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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자전거 고수의 등장

두 발 자전거 타고 초등학교로

by 은호씨

나의 엄마는 ‘한’이 많은 사람이었다. 딸이라서, 오빠들만 줄줄이 사탕인 집의 막내라서. 해 보지 못한 것도 많고 배우지 못한 것도 많았다. 엄마는 두 발 자전거를 못 탔다. 타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가 적당히 크자마자, 기어코 두 발 자전거를 가르쳤다.


그래서 나에게는 딱히 자전거에 대한 ‘한’이 없었는데도 생각보다 빨리 그날은 찾아왔다. 딸아이는 놀이터에서 쌩쌩 자전거를 타는 오빠들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눈빛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이 향한 곳은 오빠들이 아니라, 보조 바퀴를 제거하고 빠르게 달리는 두 발 자전거였던 것이다.


아이는 5살 어린이날 선물로 받은 핑크색 자전거를 참 좋아했다. 봄과 가을엔 어김없이 베란다에 있는 자전거를 꺼내달라고 졸랐다. 자전거는 부피가 상당했다. 무게도 무거웠다. 하지만 나 또한 자전거를 타는 기쁨을 알기에, 군말 없이 분부를 이행했다. 아이가 네발 자전거를 타면 이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찌르릉찌르릉.


금세 자란 아이는 더 센 소리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올 가을 과감히 두 발 자전거에 도전을 하겠다고 하기에, 나는 사실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 저학년 정도에 보통 타지 않나? 아이 아빠도 조금 갸웃하더니, 한번 해보라며 거든다. 남편의 지론은 ‘일단 해 봐, 안되면 말고.’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주말 점심을 먹고, 보호대를 단단히 두르고 아이와 남편만 먼저 내보냈다. 아이에게는 먹을 것을 조금 싸서 뒤따라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30분 정도면 넘어져서 울고 들어오겠지 싶었다. 그러면 그냥 집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슬렁슬렁 청소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 아닌가.


가을이라고 해도 바람이 매서워서 가만히 있으면 쌀쌀한 느낌이 드는 주말이었다. 그런데 공터에서 자전거에 집중하는 딸아이의 코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다. 집중하면 살짝 나오는 입 모양도 어김없이 나왔다. 내가 나갔을 때는 아빠가 잡았을 때만 출발할 수 있긴 했지만, 직선 코스에서는 균형을 잡고 얼추 달리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정말 잠깐의 주행이었지만, 아이는 이 정도라도 해낸 것이 뿌듯한지 한껏 목소리가 들떠 있다. 아빠는 한 시간 만에 녹초가 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낮은 아이 자전거를 계속 잡고 있는 것이 허리에 무리가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남편과 교대를 했다.


그런데 아이는 손이 바뀌어서인지 툴툴댔다. 아빠가 잡아주는 것과 다르다며, 이렇게 잡으라며 훈수를 둔다. 그 말투에 짜증이 섞여 있어 훈육을 하려다, 마음을 접었다. 지금은 또 그런 상황이 아니니. 엄마는 네가 넘어질까 봐 그쪽으로 잡은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이 먼저 나왔다.


엄마, 넘어져도 돼!


대번에 나온 아이의 말에, 그래 그렇지. 또 띵 맞았다. 그래, 잘 넘어지라고 보호장구까지 챙겨놓고, 나는 또 이중삼중으로 아이를 보호하려고 했었다. 넘어져야 배울 수 있는 건데. ‘넘어져 봐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면 넘어지지 않는다’는 걸 배우지 않겠는가. 나 또한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는 걸 잠시 잊었다.


초등 입학을 앞두고, 아이에게 닥칠 변화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닐까. 아이가 해야 할 것들을 대신해 주려고 또 한 발 앞으로 혼자 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이날, 아이는 결국 제대로 넘어져 으앙으앙 울긴 했지만 그래도 장장 3시간 만에 두 발 자전거 곡선 주행까진 성공했다. 왠지 딸아이의 초등 입학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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