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졸업식인가, 엄마의 이별식인가
며칠 전,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했다. 퇴근 후 헐레벌떡 유치원에 도착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며 행사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나는 눈물을 참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시작부터 한 두 방울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건만, 선생님들이 제자들에게 쓰신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엔 거의 오열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나를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싶다는 듯, 의자를 들어 자리 틈을 벌였다.
정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지난 3년간 아이는 집만큼 유치원에 오래 머물렀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등원도 하원도 도보였다. 아이를 재촉하며 아침엔 같이 집을 나섰고, 퇴근 후에도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출근할 때 타야 할 버스 정류장이 유치원 코앞에 있었다. 애초에 그 버스가 아니었다면, 수락하지 않았을 재입사였다.
그러다 보니,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당직은 매달 요일별로 돌아간다는 사실, 인원수가 있어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당직을 안 서는 로또 달이 있다는 사실, 아이를 담당했던 선생님 두 분이 대학 동기였다는 사실, 총무 선생님에겐 장성한 자녀가 있다는 사실, 다이어트를 시작한 몇몇 선생님은 직장 근처에서 운동을 하신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었다.
두 가지 마음이었다. 아무리 많게 보아도 20대 중반이나 30대 초반인 풋풋한 이 선생님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워킹맘이 되어 일을 시작하고 나서, 더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일과 내 삶은 분리해야 하며, 그래야 더 오래간다는 걸. 가끔씩은 내 20대가 스쳐 지나가며, 나는 그들이 자신의 일을 더 오래 사랑하길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종종 퇴근하는 선생님들과 마주쳤고, 가끔은 그녀들을 귀찮게 했다. 나는 퇴근후 마트에서 마주친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는 아이를 부리나케 데리고 와 으름장을 놓았지만, 선생님은 기어코 아이를 찾아내 젤리를 사주셨다.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며, 나는 그냥 그 마음이 정말 진짜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고된 시간이었다. 퇴근 후 아이를 씻기다가, 엉엉 울어버린 여름 날도 있었다. 등하원을 혼자서 다 할 수 없다면 일을 시작하지 말라던 남편의 반대가 있었기에, 초반에 오기로 버틴 날이 좀 됐었다. 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으면 덜컥 내려앉던 심장, 그리고 아픈 아이를 바라보며 다음 날의 출근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드는 죄책감까지.
그 시간 안에서 남편보다도 선생님들이 의지가 되었다면, 조금 과언이려나. 특히, 집에서 일하던 내가 갑자기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던 아이의 6세 담임 선생님은 내게 구세주였다. 매일 같이 하원 후 놀이터를 가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자, 아이는 한동안 출근하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으니까.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아이도 그 시간들을 이렇게까지 잘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졸업식 내내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유치원을 나서며 선생님들께 포옹을 청했다가 또 울었다. 참 감사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아이들을 진심과 사랑으로 대하여, 꼬물대던 그들을 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성장시켜 주신 그분들이.
헤어짐은 항상 힘들고 변화는 늘 두렵다. 우리 가족은 내일 이사까지 감행한다. 주말마다 산책하며 정들었던 동네, 아이가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모래 놀이터, 매주 화요일마다 서던 장에서 먹던 주전부리를 모두 뒤로하고 새로운 터전으로 떠나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 생각해보면 살면서 했던 모든 선택이 그랬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을 좋은 결과로 만드는 것도 내 몫이니까. 다시 한번 힘을 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