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음식, 너무 많은 음식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오랜 ‘고질병’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나는 토한다. 종종 간헐적으로. 그날의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서도 아주 갑자기 메스꺼움이 찾아와 화장실 변기를 잡아야 한다. 그렇게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고 나서야 편안해지는 일명 ‘토병’이 있다.
시작은 중학생 때였다. 그 시절의 나는 키가 130도 채 되지 않아 제일 작은 교복의 어깨가 한 뼘이나 남았다. 작은 건 체격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반지하에 살게 된 가정환경, 길가에서 노점상을 시작하여 집을 자주 비웠던 엄마,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거기다 사춘기였던 것 같다. 소극적이던 성격은 점점 소심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놀이처럼 유행했다. 학기 초에 친해진 무리 중 누군가의 주도하에 한 명을 배제시키기에, 그 친구와 하루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다음 날부터는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전날 같이 밥을 먹었던 친구의 태도에 마음엔 큰 생채기가 났다.
그리고 구토가 시작되었다. 음식을 하나도 넘기지 못했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바로 화장실로 가야 했다. 물을 마시고 위가 출렁이는 느낌이 들면 바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물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빈속이 오래 지속되니, 헛구역질이 나왔다. 위액을 토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다.
한참 성장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먹지 못하자, 엄마는 양방과 한방을 넘나들며 그 원인을 찾으려 애를 썼다. 이름만 대면 아는 병원에서 위도 살피고, 머리에 줄을 꽂아 일명 ‘뇌파 검사’라는 것까지 했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는 소견만 받을 수 있었다. 정서적인 영향인 것 같다며 ‘스트레스’를 운운하자 엄마는 조금 황당해했다. 어린애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냐면서.
다행인 것은 한방에서는 그래도 병명을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증상을 듣고 진맥을 이어가던 한의사는 내가 위가 약하게 태어나 다른 사람에 비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배고픔도 잘 느끼지 않고 작은 자극에도 위가 움직임을 멈추는 ‘위무력증’을 앓고 있다고. 이런 병명이 학술지에 실릴 정도로 저명한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엄마는 그저 원인을 찾았다며 안심했다.
위胃의 기능을 높여준다는 양/한방의 약을 먹었지만 ‘토병’은 잊을만하면 찾아왔다. 시험 기간, 고3, 입시 준비, 취업 준비, 이별 등.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위는 어김없이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또 시작이네.’라고 말했고, 결국 나는 이 병을 받아들였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만의 방법을 동원하여 최대한 적게 발병(?)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우선 물을 잘 마시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비릿한 물맛에 속이 울렁일 때가 있다. 나는 정말 안전(?)할 때만 물을 마신다. 음식은 따듯하게 데워 먹는다. 식은 음식이 메스꺼움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식은 음식밖에 없다면 그냥 먹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게 더 낫다.
비슷한 연유로 산처럼 쌓인 많은 음식도 버겁다. 난 뷔페를 싫어한다. 이상하게 너무 먹고 싶었던 음식도 과도한 양이 나오면 부담스러워지면서, 식탐이 싹 줄어든다. 음식에 질려버린달까.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잘 먹는 사람이 참 부럽다. 이쯤 되니, 나는 전생에 음식을 먹다가 배가 터져 죽은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음식에 관한 것은 나에게 평생의 숙제다. 내가 토하지 않을, 좋아하는 음식들만 먹게 되니 건강도 같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음식이 메스꺼움을 덜 불러오다 보니,다소 젊은 나이에도 당뇨 걱정을 다 하고 있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안 좋은 감정을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의 기억을 안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