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편지는 초등시절 썼던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엄마의 화장대에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는 작은 저금통이 하나 있었는데, 내 다이어리의 잠금장치와 크기가 묘하게 비슷했다. 그 저금통에 500원짜리 동전만 모여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호기심에 내 열쇠로 그것을 ‘딸깍’ 열어본 그 순간이었다.
유혹은 강렬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동전을 빼먹는 일에 푹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나쁜 짓은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나는 엄마에게 아주 호되게 혼이 났다. ‘너에게 너무 실망이다.’를 연발하는 엄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는 울면서 편지를 썼다. 전부 다른 의미의 문장들이었지만, 모두 단 한 가지 말이었다.
엄마,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 편지가 시작이 되어, 나는 엄마와 교환일기 비슷한 글들을 주고받았는데 이 공책은 지금도 내 방 한 구석에 있다. 반항을 막 시작하려는 딸아이를 윽박지르기도 했다가 달래기도 하는 엄마의 글 다음엔, 항상 기가 죽어 미안한 마음과 잘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나의 글이 있다. 지금도 나는 이 편지들이 내 사춘기를 알게 모르게 지탱해 주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가장 많은 편지를 썼던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동아리 동기인 남자아이들은 한 학기가 지나면 한 명씩 군대에 갔다. 나의 편지 릴레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매주 한 명씩 돌아가며 편지를 보냈는데, 나에게는 힘들다기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이다. 훗날 오랫동안 감사 인사를 받은 것까지 치면 더 좋은 추억이다.
친한 친구들이 어학연수나 해외로 오래 떠나갔을 때는 이메일이 있었다. 악필인 나에게 인터넷은 또 날개를 달아주더라.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아주 자주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메일 속 친구의 일상을 상상하게 되고 기억하는 일은 충분히 그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어색함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이쯤 되니, 편지나 메일의 매력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갸웃할지 모르겠으나,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신나게 수다를 떨고서도 ‘그 말을 하지 말걸.’ 후회하는 나로서는 이만한 도구가 없다. 누군가에게 전할 말을 글로 적다 보면, 거듭 읽게 되고 내가 꼭 하고 싶은 말만 추리게 된다.
비교적 근래에 관계를 정리하게 된 친구가 하나 있다. 난 막 아이를 낳아 키우며 집에서 ‘투잡’을 하던 중이었고, 친구는 미혼인 데다 일을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친구는 메신저 대화를 읽고도 바로 답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신나게 문자를 주고받다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나를 오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당시에 ‘애만이라도 안 잊어버리면 다행이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는데.
그때 조금 깨달았던 것 같다. 숫자 ‘1’이 사라져 버리는 메신저의 세상에서 답변하는 속도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또 느끼게 되었다. 걱정과 주름이 늘어나는 나이가 된 후, 메신저로는 점점 더 단편적인 이야기만 주고받게 된다는 것을.
좀 더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상대방의 근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 그 상대가 이제 내게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기에. 하지만 또 알고 있다. 우리는 이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나이가 되었다는 걸. 그래서일까. 문득 내가 좋아했던 편지가 생각이 났다. 내 사람들과 메일로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