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호3. 변화, 변경, 변동 등

여기서 잠깐 쉬어가도 될까요?

by 은호씨

나는 3월이 싫었다. 아니, 두려웠다. 새 학기가 되면 교실도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고, 친구도 바뀌었다. 정말 달달 떨면서 그 시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청난 긴장 상태로 속으로는 계속 연습했다. ‘넌 이름이 뭐야?’ 그러다 누군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내가 수백 번 연습한 그 말을 해주면, 그제야 나는 스르르 봉인이 해제되는 느낌이었다.


자라면서 몇 번 경험을 해보니, 막상 그날 그 상황이 되면 내가 또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멍석을 깔아주면 오히려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과도하게 연습을 하는 탓인지 오히려 ‘땡!’하면 잘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시험을 보거나 하는. 이 놈의 긴장이 풀릴까 싶어 차라리 그날이 빨리 왔으면 바랄 때도 있었다.


막상 변화가 생겨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나는 작은 변화에도 흔들리는 성인으로 자랐다. 예컨대, 주말에 남자 친구와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고 치자. 나는 주중 회사 점심으로 중식을 피한다. 데이트 당일에도 내 입은 그 메뉴를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그런데 다소 즉흥적인 지금의 우리 남편은 이렇게 말하고 휙 메뉴를 바꾸는 위인이었다.


어? 저기 왜 사람이 많이 서 있어? 저거 먹자!


거절을 잘 못하기도 하고, 음식 메뉴가 하나 바뀌었다고 툴툴대기도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맞추는 편을 택한다. 그러면 그날은 불만족스러운 날이 되고, 하기로 했던 일정을 지켜주지 않는 상대방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나?’까지 가는 날도 있었다. 좀스러운가? 하긴, 지금 쓰면서도 좀 내가 별로다.


물론 지금은 안다. 이 모든 게 계획적인 나의 성향이고,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의 망상에 가깝다는 걸. 그러면서 또 한 번 느낀다. 난 정말 변화에 취약하구나. 그래서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던 학창 시절을 지나, 내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개척해야 하는 성인이 되어 더 많이 힘들었구나.


내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 학과는 교직 이수가 안된다는 걸.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야 했다. 대학 공부는 적성에 맞질 않았다. 대학원까지 집에다 손을 벌릴 깜냥도 되질 않았다. 그렇게 내가 벌어서 대학원에 가겠다고 일찍 아르바이트 세계에 뛰어들었는데, 그 이후에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좋은지 알려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야 했지만, 나는 안정이 더 좋았다. 그저 그 자리에 자꾸 주저앉고만 싶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폭으로 휘적휘적 앞으로 나갈 때, 나는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를 살아가려면, 그만한 돈이 필요하므로.


그러다 문득 힘에 부친 나는 결혼을 했다. 부끄럽게도 난 ‘결혼’이 또 다른 ‘안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엄청난 ‘변화’라는 걸 왜 나는 몰랐을까. 아니, 어쩌면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혼으로 인해 일어난 변화를 조금씩 받아들였다. 엄마와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시댁 식구들과 가족이 되고, 남편을 난임병원 문턱을 넘게 하고, 아이를 낳았고, 육아를 했다. 지난 10년은 유일하게 내가 변화를 팔벌려 환영했던 시간이었다.


삶은 정말이지 ‘변화’ 그 자체인 것 같다. 오죽하면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할까.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 같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변화를 싫어한다지만, 이 정도면 꽤 잘 해내고 있는 것도 같다. 나이를 먹어가니 아주 조금은 알겠다. 작은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그에 대한 감정 소모를 줄이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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