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저를 마주 보지 못하겠어요.
나에겐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그중 몇몇은 굉장히 어둡고 슬프고 최악인 추억이나 사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있다. 그 일은 내가 22살이 되던 해에 일어났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항상 눈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짙고 두꺼운 쌍꺼풀을 가지고 계셨는데, 난 얇은 속쌍꺼풀인 데다가 눈이 쭉 째져 있었다. 뭔가 눈만 달라지면, 내 삶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성형수술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착각이었다.
알바를 하며 돈이 얼추 모이자 수술을 알아보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으나, 남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돌멩이를 ‘뚜까’ 처맞을 때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얼마나 오래 곱씹었을까. 집 근처 번화가의 한 성형외과 문을 두드렸던 그 순간을. 얼마나 많이 원망했을까. 눈두덩이의 살이 많은 나에겐 그런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 그 의사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엄마에게만 말하고 수술을 감행했다. 그래서 한두 번은 엄마도 원망했다. 내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때, ‘그냥 널 믿어.’라며 왜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았느냐고.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선택이 잘못되었던 경험이 켜켜이 쌓여 지금 이 자신감 없는 내가 만들어졌구나.
처음엔 수술 직후의 부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당시 같은 방을 썼던 여동생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흰자위만 보이는 언니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아빠는 괴물이 되어버린 큰 딸을 한동안 투명인간 취급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울이 아닌데도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실, 그 시절의 나날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대의 대부분, 난 절망했다. 그냥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굳이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잘못된 성형수술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내 발로 걸어가, 내 돈을 내고, 내가 그 침대에 누웠으니, 마땅히 탓할 곳이 없었다.
얼마 후, 엄마 손에 이끌려 강남 유명한 병원에서 재수술을 한 뒤에야 난 비로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막 쌍꺼풀 수술을 한 눈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죽어버리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죽을 용기 따윈 없었던 나는 다른 가면을 찾아 썼다. ‘그냥, 좀 바보 같은 선택을 한 푼수 같은 사람’으로.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왜 그렇게 수술을 했어요?
비수처럼 박힌 말들도 많았다. 오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겉으로 봐서는 상처가 없어 보이지만, 그 파편들은 가슴 안에 콕 박혀 나오질 않는다. 남편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던 시절에도 그의 친구 모임에 가는 일은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소개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했다는 나의 ‘눈’에 대한 말에 또 한 번 무너졌었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나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이야기로 내가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이유, 거울을 잘 보지 않는 이유, 인스타와 같은 SNS를 안 하는 이유가 모두 설명이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염치없이 기대한다. 내 아이만큼은 자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덧붙여서, 또 걱정한다. 아이가 언젠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의 ‘눈’에 대해 물어오면 어쩌나. 나는 평생 이 숙제를 끝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