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호4. 거울 보기, 사진 찍기 등

아직도 저를 마주 보지 못하겠어요.

by 은호씨

나에겐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민이 있고, 그중 몇몇은 굉장히 어둡고 슬프고 최악인 추억이나 사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있다. 그 일은 내가 22살이 되던 해에 일어났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항상 눈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짙고 두꺼운 쌍꺼풀을 가지고 계셨는데, 난 얇은 속쌍꺼풀인 데다가 눈이 쭉 째져 있었다. 뭔가 눈만 달라지면, 내 삶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성형수술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착각이었다.


알바를 하며 돈이 얼추 모이자 수술을 알아보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으나, 남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돌멩이를 ‘뚜까’ 처맞을 때까지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얼마나 오래 곱씹었을까. 집 근처 번화가의 한 성형외과 문을 두드렸던 그 순간을. 얼마나 많이 원망했을까. 눈두덩이의 살이 많은 나에겐 그런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 그 의사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나는 엄마에게만 말하고 수술을 감행했다. 그래서 한두 번은 엄마도 원망했다. 내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때, ‘그냥 널 믿어.’라며 왜 먼발치에서 지켜만 보았느냐고. 가만 생각해 보니, 내 선택이 잘못되었던 경험이 켜켜이 쌓여 지금 이 자신감 없는 내가 만들어졌구나.


처음엔 수술 직후의 부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당시 같은 방을 썼던 여동생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흰자위만 보이는 언니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아빠는 괴물이 되어버린 큰 딸을 한동안 투명인간 취급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울이 아닌데도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실, 그 시절의 나날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대의 대부분, 난 절망했다. 그냥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굳이 지금의 표현을 빌리자면, 난 ‘잘못된 성형수술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내 발로 걸어가, 내 돈을 내고, 내가 그 침대에 누웠으니, 마땅히 탓할 곳이 없었다.

얼마 후, 엄마 손에 이끌려 강남 유명한 병원에서 재수술을 한 뒤에야 난 비로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막 쌍꺼풀 수술을 한 눈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죽어버리고 싶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죽을 용기 따윈 없었던 나는 다른 가면을 찾아 썼다. ‘그냥, 좀 바보 같은 선택을 한 푼수 같은 사람’으로.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왜 그렇게 수술을 했어요?

비수처럼 박힌 말들도 많았다. 오래 시간이 지난 지금은 겉으로 봐서는 상처가 없어 보이지만, 그 파편들은 가슴 안에 콕 박혀 나오질 않는다. 남편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던 시절에도 그의 친구 모임에 가는 일은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소개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했다는 나의 ‘눈’에 대한 말에 또 한 번 무너졌었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나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이야기로 내가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이유, 거울을 잘 보지 않는 이유, 인스타와 같은 SNS를 안 하는 이유가 모두 설명이 될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염치없이 기대한다. 내 아이만큼은 자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덧붙여서, 또 걱정한다. 아이가 언젠가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나의 ‘눈’에 대해 물어오면 어쩌나. 나는 평생 이 숙제를 끝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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