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4. 산책 또는 걷기

두 다리는 아직 튼튼해요.

by 은호씨
여기가 대체 어디야?


중학교 배정을 받은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집 바로 코 앞에 중학교가 두 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학교에 가게 되었다. 전교에서 몇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확률이 매우 낮았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버스로는 세 정거장, 걸어서는 한 시간 남짓. 제법 거리가 있었다.


아침에 눈곱만 떼고 후다닥 뛰어가도 충분했던 초등 시절을 졸업하고, 원거리 중학교를 가게 되자 얼마간 나는 힘에 부쳤다. 몇 번 버스를 타보기도 했지만, 내리려던 곳을 지나쳐도 ‘저 못 내렸어요!’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숫기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등굣길 만원 버스를 탈 자격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나는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남은 선택지는 걷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점차 요령이 생겼다. 같은 길을 매일 같이 걷다 보니 지름길도 찾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시간이 더 걸렸던 소요 시간이 45분까지 단축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등교 시간보다는 하교 시간이 좋았다. 딱히 배회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 가는 대로 이리저리 걷다가 컵떡볶이라도 하나 사 들고 오는 날이면 마냥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에겐 집이 그다지 마음이 편한 곳이 아니었기에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걷는 이 시간을 혼자 충전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던 것 같다. 친구들을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친구와 만나 같이 걷게 되는 날이면 조금은 아쉬웠던 기억도 있다. 오늘은 ‘만약 우리 집이 복권에 당첨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려고 했는데, 쩝.


그러고 보니 나는 참 어렸을 때부터 ‘혼자 놀기’의 정수를 보여줬던 것 같다. 현실은 시궁창에 가까웠으나, 상상 속 나의 세상은 꽃밭이라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져온 특훈 덕분인걸까. 어쨌든 걷는 것은 나에게 쉼이었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잠깐의 휴식이었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면서 이제는 ‘쉼’의 공간이 ‘집’으로 바뀐 듯 하지만, 난 여전히 산책을 좋아한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조용하고 한적한 공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면 몇 시간이고 걸을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당 충전은 필요하겠지만.


아이를 낳고 5년 동안 살았던 집은 빌라였다. 우리 집도 그랬지만 그 근방의 모든 건물이 1층에는 상가, 2층부터는 세를 주는 ‘상가주택’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사부작사부작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 주변을 참 많이도 걸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여서 안타깝게도 상가들은 자주 바뀌었는데, 우리는 산책을 하며 그 추이를 살피다 ‘맛집’을 찾아내기도 했다.


마흔이 넘도록 뚜벅이라는 사실이 어떨 때는 부끄럽지만, 아직은 튼튼한 다리가 있어 시간과 주소지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넘친다. 요즘은 ‘아이’라는 변수가 있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렇지, 예전에는 어디든 지하철역만 부르라고 떵떵거렸었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던 너무도 순수했던 시절의 이야기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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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올 겨울 최강 한파가 찾아왔었다. 마스크에 목도리까지 동동 싸매고 출근하며 산책을 할 수 없는 이 계절이 야속하다. 하지만 매서운 바람만 조금 사라지면, 겨울이라고 해도 ‘걷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런 계절에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추운 겨울에도 손이 따듯한 남자를 골랐으니까. 그리고 그와 똑닮아 손이 뜨끈한 여자 아이도 낳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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