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6. 종이 책, 그 질감

지류 사랑 포에버

by 은호씨

어린 시절, 엄마는 집안 형편이 기울었음에도 내가 원하는 책이 있으면 군말 없이 사주셨다. ‘나이키 잠바’, ‘아디다스 운동화’는 사고 싶어도 말도 꺼낼 수 없었지만, 읽고 싶은 책은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어렸음에도 나는 책을 사달라고 하면, 엄마가 살짝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엄마가 그 시절 어떤 마음으로 내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생각하면 좀 미안해지는 감은 있다.

좀 더 자란 뒤에는 동네 ‘책 대여점’이 내 안식처였다. 4-5일씩 이어지는 시험기간을 마치고 나면 친구들은 번화가에서 만나 용돈을 모아 노는 게 보통이었다. 패스트푸드점과 노래방을 거치는 그 코스를 나도 몇 번은 참석했지만, 친구들 눈치를 보다 노래방에서 일명 ‘삑사리’라도 겪고 나면 이 기억은 1년 내내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보니, 시험을 마치면 평소 읽고 싶었던 만화책을 최대한 많이 빌려 방구석에 박히는 편이 나았다. 한 권에 300원, 연체료는 하루에 100원. 일본 로맨스 만화를 많이 봤다. 「후르츠바스켓」, 「파르페틱」, 「나나」, 「꽃보다 남자」를 읽다가 하다 하다「원피스」까지 울면서 봤음을 고백한다. 아무리 대여료가 쌌어도 모으면 꽤 되는데, 내 비루한 기억력 이슈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는 판타지 장르까지 섭렵했다. 내가 중고생 시절에 쭉 나왔던 「해리포터 시리즈」. 정말 ‘4. 아즈카반의 죄수’는 명작 중의 명작이었다. 소설책에 손이 붙은 듯, 책을 덮을 수가 없어 밤을 새하얗게 지새우던 기억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권을 구입했다. (아! 「드래곤라자」도 빠트릴 수 없다.)


TV에 나와 지식을 드러내는 ‘학자’들을 입 벌리고 보면서(알쓸신잡 등), 내가 책을 통해 지식을 얻지는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냥 무언가를 읽는 걸 좋아했다.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나에게는 ‘오락’이었다. ‘흥미 위주의 독서’를 했고, 그것은 지금도 비슷하다. 나는 신혼 초 남편과 징그럽게 다툴 때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육아로 고민을 거듭할 땐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를 집어 들었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가 많고,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접근성이 높기도 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런 영상류는 나에게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 느낌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데, 그 편이 더 오래 나에게 남아 두고두고 힘이 된다. 또, 종이 자체의 질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다만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턱턱 책을 사주셨나 싶을 정도로, 책을 사는 데 고려할 건 많은 것 같다. 난 아이를 낳으면 일명 ‘책육아’를 해보고 싶었지만, 철마다 유명한 전집을 들일 경제적인 여력도 공간적인 여력도 부족했다. 그래서 아직도 전집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이 책 꽂을 곳도 부족한데 나까지 보탤 수는 없어, 나는 아래와 같이 책을 소비한다.


1. 읽고 싶은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을 이용한다. (E-book 가격 정도를 소비하는 것 같다.)

2. 인덱스를 붙이며 읽고, 마지막에 붙여놓은 부분을 메모하거나 곱씹는다.

3. 다른 읽고 싶은 책이 나타나면, 인덱스를 뗀 후 그 책을 다시 판매하여 공간을 확보한다.


내가 우리 집에서 차지할 수 있는 책장은 딱 한 칸이다. 공간적인 문제로 E-book도 고려해 보았지만 그 어떤 아이템도 종이 책의 느낌을 대체할 순 없다는 걸 더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버리고 사며 딱 그 정도의 책만을 유지하는 법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꽂힌 작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왜 이제야 이 분을 알게 되었지 싶은 분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분이 많은 책을 쓴 후 알게 되어 더 기뻤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그분은 바로 ‘김민섭 작가님’이다. 그의 삶의 방식, 노동에 대한 인식, 그 바른 생각이 책에 덕지덕지 묻어 있어 읽으면서 감사했다. 언젠가 강릉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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