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친구를 만나다(레온 to 산마르틴델까미노 25.8km)
1. 숨 고르기
순례 16차일로 적을지 17차일로 적을지 잠시 고민했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 쉬는 것도 순례의 일환이기에 오늘 날짜로 적는다.
그제 42km/백리를 몰아쳐 걷고 난 후, 이건 똘끼로 넘기기 어려운 일정임을 고백하며 큰 도시 레온으로 점핑, 하루를 잘 쉬었다. 쉬는 동안 레온시를 좀 돌아다녀 볼까 싶었지만 그 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가 호텔 침대에서 하루 종일 까무룩까무룩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길 위에서 쌓인 피로를 어느 정도 풀어낼 수 있었다. 저녁 나절엔 잠깐 비 개인 하늘 아래 작은 도시 나들이도 할 수 있었고.
2. 길 위에서 만난 귀인
까미노 페북, 카톡, 왓츠앱에서는 오늘내일 주의보 알람이 계속 뜬다. 큰 눈/비 온단다. 왠만하면 움직이지 말고 현재 위치에 1~2일은 머무르시오! 내 앞의 일정이 앞으로 3~4일 900~1400m 고지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일정이라 신경이 쓰인다. 장소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오늘부터 이틀 뒤 목요일까지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대체로 춥고 눈비 많이 뿌릴 날씨)
그런데 어제 하루 종일 비 온다고 이미 쉬었으니 돌아갈 날짜 정해진 나는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 내일보다 모레보다 그나마 오늘의 날씨는 조큼 나을 수 있으니 오늘 하루 다시 열심히 걸어보자 다짐한다. 출발 때만해도 해도 반짝. 와~ 레온과 아름다운 이별이닷!!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고원의 날씨. 출발 1시간 후부터 후두둑 흩뿌리떤 비가 갑자기 눈으로 바뀐다. 음, 비보다는 눈이 낫지. 우와 첫 눈이다! 기분을 다시 업시키고 싶다.
눈보라 맞으며 15분 남짓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안녕하세요~, 쉬었다가세요~!!" 큰 외침이 들린다. 시골인데, 너무 정확한 한국어 목소리. 잠시 뒤돌아 반가움과 감사 표시할 참인데, 너무 적극적이시다. "한국인 맞죠? 반가워서 그래요, 제가 커피 한 잔 사드리고 싶어요, 아 저 이상한 사람 아니예요, 저기 이미 한국 분 한 분 계시니 염려 말고 들어오세요~"
가방 방수보호대도 씌우고 나도 우비를 꺼내야 할 시점이기에 까페에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이미 한국인 여성 한 분이 따뜻한 커피와 또르띠야 한조각 드시며 행복한 표정이다. 본격적으로 눈비 쏟아지는 찰라였는데, 안심하며 귀인을 만나 안락을 취해도 되는 시점인 듯 급 마음이 편해진다.
통성명해보니 오늘 나를 초대한 분은, 어제 길에서 우연히 본 레온시 한양태권도 조성준 관장님, 먼저 구출된 분은 경기도 S시 K 선생님이었다. 레온 정착 39년차시라는 조관장님은 아침 해 보고 근처 골프장 가는 길에 급변한 날씨에 철없는 순례객들 구출하는 중이었고, 공교롭게 구출된 순례객 둘이 모두 한국 여성이었던 것이다.
이 곳 날씨의 급 변침을 잘 아시는 조관장님은 일단 우리를 카페로 들어앉혀 따뜻한 커피와 또르띠야를 멕이며 "나 요새 한국어 고팠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얘기 끝에는 걱정이 끝나지 않는지 이런 날씨 안 걷는 게 좋겠다, 내가 다음 숙소까지 태워주시겠다 따뜻한 인정을 나눠주시려는 중.
어제 하루 푹 쉰 나도 & 레온 출발 오늘이 순례 첫 날인 K 샘도 오늘은 에너지 만땅 상태라 걸어 보겠습니다~. 조관장님 친절을 뒤로 하고 오늘 하루 겁없이 걸어보기로 합니다. 맘 따뜻한 조성준 관장님은 여릉엔 레온 외곽에서 알베르게도 운영하신다고. 다음 산티아고 때는 꼭 팩소주 몇 개 안고 와서 인사드리고 시간을 보내야지 싶습니다. (레온, 한양태권도, 조성준 관장님! 오늘 너무 감사드려요, 꼭 또 뵙겠습니다!!)
3. 고원의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조관장님 커피와 오전간식 나누다 보니, 급 해가 납니다. 이럴 때 빨리, 최대한 가보겠다 인사 나누고 K 샘과 저도 서둘러 다시 길을 나섭니다.
그 뒤 19km. 900m 고원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네요.
거의 수평으로 꽂히는 눈비가 내리다가,
선글라스가 필요한 햇볕이 비추다가,
스틱이 꺽이고 직진으로 전진하기 어려울만큼의 강풍이 불다가,
3시 이후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땐 눈비가 우박 얼음덩이로 바뀌어 볼 살을 사정없이 때리기까지.
사실 K 선생님은 그제 마드리드, 어제 레온 도착해 오늘 까미노 1일차인 초보 순례객
- "엄 선생님, 까미노가 이리 힘든건가요?"
-"K샘, 첫 날 섕장에서 론세스바예스 넘는 1400m 고지가 젤 어려운 줄 알았는데요, 우와~ 오늘 이 우박 섞인 날씨는 최대 (고) 힘든 기행이네요. 샘, 첫날부터 고생 진짜 많으세요~"
4. 사서 하는 개고생, 이라도 좋아.
오늘의 날씨(만 아니었다면 길은 평탄명)만 보면 현재까지 겨울 까미노에서 힘든 순위 진짜 끝판왕이다, 오늘은. 고원 위 바람막이 적혀없는 벌판 위에서 1m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눈보라를 헤치며 걸어, 마을길이나 순려길 비포장 진흙탕이라 조금 위헝을 감수하면서도 지방도 옆 좁은 가로길을 걸어냈다.
초심자 K샘을 염려하며 안전을 기하려 했다. 겨울 까미노의 어려움 감당하면서 혼자 걸으려는 K샘은 무슨 과목일까 싶었는데,ㅎ 엄청난 우연+ 다행스럽게 K샘은 지리 선생님!!
다행히 맘 통하는, 두 단계 확인해 아는 사람 막 겹치는 지리샘!! ㅎ
K에겐 오늘이 첫날이지만,
이리 사서 하는 개고생이 왜 더 기억에 남을까?
삶에서 뭐가 중요한 것이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경험의 가치를 나눌 것인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들과 어떻게, 세계지리를, 여행지리를, 세계시민교육을 더 흥미롭게 나눌 것인가?
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와 가능성을 니눠본다.
세상이 망해가는 거 같지만,
이렇듯 다양한 지점에서 자리를 지키고
사람을 구하고 지혜를 나누려는 샘들이 있어서 또 얼마나 다행인지!!!
최고학부나왔다지만_알콜성치매로_몰상식의_대명사가_된,
부끄러움_너머_위험해지고_있는
굥통령의_#외교참사_시대에
작은_힘이지만_우리라도_학생과_대중일반의
세계지리교육_잘_할_방법에 대해
앞으로_며칠_길동무K와_좀더_얘기_나눠보겠습니다!!
Jongmi Kim 세상에!! 관장님 그냥 뵙기에도 느무 매력적이십니다~^^ 보라색 스웨터와 살짝 꼬은 다리로 잡은 포즈 ㅎㅎㅎ 포스가~ 게다가 한국의 지리샘과 우연한 조우라뇨.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면 되는, 그래서 오늘의 만남과 오늘의 풍경에 더 집중하게 되는 순례길 여정에서 많이 배우게 되네요.
Sook Kim 와우.. 오늘은 푹 주무시고.
이경한 대단하십니다! 눈오면 쉬엄쉬엄 가셔요! 산티아고가 어디 따로 있낭요!
구자춘 무리하지 마세요. 천천히 가야 멀리갈 수 있습니다.
=> 어제는 날씨 때문에 더 갈 수도 없었다는. 고맙습니다~^^
황규철 대단한 체력입니다.
==> 산티아고 걷는 순례객들이 대체로 그리 된답니다. 체력은 자신하고 있었지만 저도 아침마다 일어나고 걸어지는 게 신기한 지경. 몸도 이 주인놈이 하루이틀 이럴 거 아닌가보다 비상상태로 버티는 듯 하고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