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셋 길동무(산마틴델까미노 to 아스트로가: 24km)
1. 좋은 길동무와 함께라면 가는 길 험해도 전진할 수 있다!
오늘은 20대, 30대, 40대 한국 여자 셋이 길동무되어 같이 걸은 날.
30대 K 선생은 어제 레온부터 25km를 같이 걸어왔던 길동무고, 20대 L은 나의 순례길 첫날이었던 새해 첫날부터 3일간 길동무 혹은 잠동무 했던 친구다. 어제 K와 내가 알베르게에 도착해 우리가 뚫고온 창밖 눈보라 넋놓고 보고 있는데, 한 5분 뒤 L도 눈보라 헤치며 뛰어들어온다. 4일차 팜플로냐에서 내가 하루 쉬기로 하면서 헤어졌는데, 내가 점핑하는 바람에 L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 한 번은 만나겠지 싶었는데 이리 만나니 진짜 반갑다. 손부여잡고 팔짝팔짝 뛰며 반갑게 인사한다.
어제 숙소의 여자손님은 우리 셋. 오붓하게 저녁 같이 먹고, 한방에서 자며 오늘의 순례길도 동행했다.
오늘의 순례길은 24km. 두 개의 마을을 지나는 것 외에는 대체로 국도변을 걷는 코스다.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있고, 오늘도 오전과 오후 1시간 안팎씩 눈 예보가 있는 날. 그래도 셋이서 서로 의지하며 잘 걸어가 보기로 의기투합해 본다.
2. 종잡을 수 없는 고원의 날씨
일기예보상에서는 눈은 오전 11시대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고원의 날씨는 당췌 종잡기 어렵다. 7시반 체크할 때는 멀쩡하게 맑은 하늘을 봤는데, 8시 반 출발하려니 벌써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5.6km 거리 첫마을까지는 국도변을 걷는 길.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하자 서로 격려하며 출발한다.
1시간 넝게 눈발 속을 걷다보니 이번엔 동쪽부터 하늘빛이 밝아진다. 오늘은 그래도 서북쪽 눈구름 기운보다는 해의 기운이 센 날이다. 날이 밝아가고 해가 높아질수록 회색 구름이 물러간다. 결국 우리가 걸어가는 서쪽 하늘의 절반도 푸른기운을 띈다.
이제부터는 여유 가지고 경관 즐기고, 서로 사진 찍어주며, 열심히 걸어가면 되는 길. 걷는 속도 비슷하고, 서로 배려하는 세 여자의 순례길은 자주 함박 웃응꽃이 핀다.
물론 날씨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선글라스를 꺼내고 선크림을 발라야할만큼 볕이 좋다가, 볕은 좋은데 바람이 거세다가, 급 눈비내려 우비 꺼내 입었는데 채 5분만에 푸른 기운이 다시 압도하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길동무들 덕에 힘들지 않게 오늘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하게 되었다.
3. 맛과 멋이 있는 도시 아스트로가
오늘의 목적지 아스트로가는 인구 1.1만의 성곽도시. 레온주 전체로 보면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주교좌성당이 있는 순례길의 주요도시다. 우리 셋이 서로 격려하며 오늘 하루 열심히 걸어온 이유는 이 도시의 맛(미슐렝 식당 Las Termas)과 멋(주교궁)을 누리기 위해서.
지역명물 유명 식당은 점심장사(11am~4pm)만 하는 곳이라 늦어도 3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생각보다 식당은 가족이 운영하는 소박한 곳인데, 오래된 인테리어도 셰프부터 직원까지 서비스가 기품이 있다. 시간 안에 아슬아슬 도착해 오늘의 메뉴를 즐겁게 먹었는데, 셋 모두 오늘 거의 처음 먹는 제대로된 식사였던지라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끝내 버렸다. (^^;;;)
입이 즐거웠으니 다음은 눈이 황홀해질 차례. 이 도시의 자랑 주교궁(Palacio Episcopal de Astorga)을 찾는다. 이 건물 또한 스페인의 대표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당대의 그라우 주교가 친구인 가우디에게 의뢰해 건설한 주교의 사무와 생활공간이다. 현재는 가우디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곳이자 순례자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곳.
맘 맞는 길동무들과 함께 하니,
무리하지 않고 힘닿는데까지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고,
걷는 일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순례지역의 맛과 멋도 즐길 수 있다.
간만에 온몸으로 순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오늘은 그런날, 기억에 오래 남을 행복한 날. ^^
4. 앞으로의 여정
Astroga에서 최종목적지 산티아고 드 콤포스테라까지 남은 거리는 260.5km. 중간 점핑이 있었지만 500km 가까이를 벌써 걸어온 셈! 앞으로 11일 후인 1월 29일에 도시 입성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하루 20~28km 사이로 크게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일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날씨 그리고 고도(profile of route) 레온주에 들어온 뒤부터 날씨를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지역민들도 예외적이라할만큼 비가 잦고(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은 Melide라는 마을에는 홍수가 났다는 뉴스가 뜨고), 다음주초까지 영하권 추워도 서너 차례 닥칠 예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두 개의 험한 코스가 남아있으니, 각각 1,400m, 1,300m 가파른 산지를 넘어야한다는 것. 사실 오늘의 목적지 아스트로가는 1400m 고지 포세바돈(Foncebadón)의 바로 앞도시이다. 포세바돈은 산티아고 직전의 높은 고개마루로 철의 십자가라는 유명한 랜드마크가 있는 곳이다. 엘페르돈 고개의 철제 순례객 조각상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의 대표적인 상징물.
그런데 최근 며칠 눈비로 인해 이 루트가 입산통제 중이다. 그래도 이 걸 꼭 봐야하는 순례객들은 오늘의 숙박지 아스트로가나 포세바돈(26km 지점) 바로 아래 산동네 라바날델까미노까지(20km 지점) 가서 날이 좋아지길 기대해본다고 한다. 길동무 셋이 한참 상의를 했는데, 나와 K는 포세바돈 등반은 포기하고 다음 도시 폰페라다까지 내일 버스로 이동하기로, L은 라바날까지 올라가 산이, 날씨가 허락하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내일 정오부터 늦은 밤까지 비(산은 당연히 눈) 예보가 있어 내내 말려봤는데, 젊은피는 모험과 운을 기대해보려는 의지가 강하다. 사실 오늘 알베르게엔 다국적 순례객이 제법되는데, 의견이 반반이다. 그렇다면 L에게 험한 등반(사실 내리막길이 조큼 더 위험한 급경사)을 해낼 체력과 날씨운이 있기를 바래 줄 수밖에. 이틀간 정들었다고 이모벌 40대(나)와 30대 언니(K)는 20대 L 내일 아침 든든히 먹고 길 떠나게 하려고 저녁먹고 이것저것 장봐서 들어왔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다반사인 까미노지만,
이렇게 정을 나누고 서로의 부엔 까미노를 빌어주는 일.
이래서 사람들이 계속계속 이 길을 걷는구나.
이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오늘은 또 이런 날!
Su Jin Lim 할아버지 신발이 매우 인상적이어요.
==> 그래서 똭. 힐아버지가 사진 찍으라고 포즈 잡아주심. ㅎ
===> Su Jin Lim 느끼는 바, 삽자루에 손잡이를 달아 놓은 나라는 전 세계에 몇 나라 안되는가봐요,, 아무리 봐도,, 저렇게 손잡이 없는 삽자루는 불편할 것 같은데,, 여기도 손잡이가 없어요. 삽에요. 그런데 또 여기 사람들인 손잡이 없는 삽이 훨씬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허릴 덜 숙여도 된다고요.
==> 오~ 나막신 신발만 집중했는데 삽도 다르네요. 북미서 K호미가 그리 각광받는 거 보면 유사용도 제품도 지역적 차이 경로의존성이 있나봅니다!!
== > 엄은희 열이면 열,, 거의 모든 한국사람들이 이 삽을 보면,, "대관절 이 삽에 힘을 실어 쓸 수 있을까" 싶은 의구심이 마구마구 들거든요,, 나도 여기서 이런 삽 쓰다보면,, 에이,, 아마존에 가서 한국 삽을 팍 사버려야지,,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이 들거든요,,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어요,, 자고로 삽질에 발과 손의 힘이 동시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뭐,, 발 쓰기도 그렇고,, 손쓰기도 그렇고,, ㅎ
==> Su Jin Lim 이런 삽은 벽에 걸어두기도 힘들어유,, 자고로 연장들은 벽에 걸어둬야 제맛인데 말이쥬,, ㅎ
Kim Myung-hwan 멋집니다!^^ 힘들어도 매일 소식 올려주세요. 저는 죽어도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못 오를 것 같지만, 따라 읽는 재미가 쏠쏠... ㅋ
==> 재밌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 ㅎ 역사성 있는 길이고 흥미로운 경관, 길동무들과의 만남 등등 좋은 점 많기는 한데, 한국인들에게 젤 좋은 건 너무도 복잡한 사회인적관계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심적 여유인 거 같습니다. 바쁜 시간 속에서라도 교수님도 여유 공간, 시간 찾아내실 수 있으시길 (사회과학도보다는 그래도 인문학자들이 그런 거 더 잘 찾아내실 거 같아요^^)
Su Jin Lim 봄과 겨울이 막 왔다갔다 하네요. 맘으로 눈으로 같이 따라갑니다요
==> 그니까요, 이상기온 겨울까미노 이미 봄이다 성급한 포스팅 반성합니다!
Ilho An 순례길이 만만치 않네요 박사님,,,,,, 끝까지 건강 잘 지키세요.
==> 네. 동절기 변수가 순례 하반기에 많아지네요. 이제는 끝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들. 감사합니다!!
Insook Chae 매일 기다렸다가 읽는 산티아고 일기. 멋져요!
==> 사부님 4월 순례 계획에 도움이 되야할텐데. ㅎ 한국처럼 극단적 방학 계절 아닐 때여서 다행이예요. 그 계절은 어떨지 또 많이 궁금합니다. ㅎ
이영수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돌아오세요~~
이명주 와~♡
김용운 갈라시아 지방 들가시면 루고 추천입니다. 구시가가 로마시대 쌓은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레온에서 사리아까지 버스로 점프를 했는데 사리아 들어가는 버스가 루고에서 있었고..루고에서 사리아까진 버스로 이삼십분이었습니다. 동절기 까미노는 날씨 변수가 많고 특히 갈라시아 지역은 날씨 변덕이 심하다더라구요. 잘 체크하셔서 안전한 부엔 카미노 하시길요!
==> 네. 이제 돌아갈 날을 마음에 담고 있어요. 웬만하면 저도 젊은피들과 같은 선택을 하는 편인데, 이제 무리 안 하려고요. 루고 유심히 살펴보겠습니다. ㅎ
김현종 우정출연입니다~~
==> 가까운 시간대 계셔서 더 반갑네요. 이집트 여행기는 마냐님 포스팅으로 잘 읽고 있어요~ ㅎ
Jeoun Soon Lee 순례길 여정 기록 늘 기다리면서 읽어요. 궁금해가지고~^^ 몸 맘 영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 감사합니다. 벌써 2년 또 지나 두 분 선생님 올해는 한국 들어오신다고. 다음엔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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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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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