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산티아고까지 간다(아르수아to산티아고콤포스텔라 39km)
이틀 늦은 순례일기
1. 홀로 순례객의 아침다짐
아르수아의 공립 알베르게는 아~ 역시 쉽지 않았다. 리모델링 '중'이라 겉모습, 최소한의 단열은 가능했지만 치명적 단점이 몇가지 있으니. 32명 수용가능한 방(실 투숙객은 다행 15명)에 콘센트가 단 두 개. 침대 머리맡에 전선은 빼놨는데 마감콘센트 설비가 없다. 대략 난감. 충전을 하려면 1층 식당에 내려가거나 화장실 콘센트를 이용해야할 판. 게다가 건물 나무바닥과 철제 프레임 2층 침대는 조금만 움직여도 삐그덕삐그덕. 순례 막바지니 순례객들은 모두 코골이쟁이(나도 포함) 무조건 일찍 자는 게 남는 건데 전날 간만에 7시간 푹 자서 잠도 잘 안온다.
<순례 = 선물>로 전날 포스팅에서 규정했으나 불평불만의 마음이 다시 스멀거린다. 이럴 때 믿을 건 나 자신의 체력 뿐. 몸이(특히 발이) 안 받쳐줘 중도포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껏 남아있는 완주 순례객 대부분이 강철체력이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 평소에서 6시간 정도 자는 편이지만 순례 동안 거의 4~5시간 정도 자고 7시면 빨딱 일어나 7kg 배낭메고 하루 25km 내외를 걸어내는 생활에 이미 적응이 되어있다.
"오늘도 잘 버텨줄거지? 얼마 안 남았으니 오는 하루도 잘 부탁한다!" 다시 혼자가 되니 혼잣말 혹은 두뇌가 다리에게 부탁의 대화를 한다.(잉?!) 자아분열스럽기도 혹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상황이라 우습기도 하지만, 내 안의 나님'들'이 서로 도와 남은 순례길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2. 순례길의 기계동반자님도 소중하게
휴대폰 충전은 엉청 중요하다. 혼자 걷는 길 지도도 봐야 하고, 사진도 찍고, 힘들 땐 음악도 듣고, 교신도 하고. 다른 여행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등장 이후 순례길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휴대폰 없던 시절 순례객은 어찌 다녔을까 싶기도 하지만, 최소 지금같은 겨울 까미노가 가능한 건 스마트 시대라서 일 것이다. 수시로 바뀌는 숙박지, 날씨, 교통편이 확인되기에 겨울 순례객들도 무모한 도전을 줄일 수 있고, 동료들과의 정보교환을 통해 실시간 업뎃을 받을 수 있다.
내 폰에도 순례 관련 앱만 3개, 즐겨찾기 사이트가 2개다. 모든 앱이 조금씩 부족함이 있어 여러 앱과 사이트 정보를 교차확인 해야한다. 여적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베테랑 유경험자나 책과 노트를 끌어언고 있는 이들도 간혹 있지만, 내 손 안의 이 작은 기계는 순례길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도와 준 일등공신. 40분 충전 배터리 잔량 60%를 만들어 놓고 이제 출발이다.
3. 오늘만큼은 한량처럼 걸으려 했으나
39.2km를 이틀에 걸쳐 천천히 걸을 예정이었다. 28km 지점 라바콜라가 오늘의 숙박예정지. 오늘 그 만큼만 걷고, 다음날은 10km만 걸어서 오전 중에 산티아고 도착 & 12시 순례자 미사 참석 이렇게 이틀.
그래 오늘은 한량처럼 걷는다. 아침 새소리 실컷 즐기고, 풍경 사진 실컷 찍고, 동네 개냥이들과 한참 놀면서 걸었는데, 아 놔 16.5km 오 피노 도착해보니(중간에 쉴 수 있는 곳이 없었음) 11시 반. 3시간만에 16.5km를 걸어온 것이다. 7kg 배낭 메고 1시간 4~4.5km를 순례초기 목표로 삼았더랬다. 그렇게 27일차, 내려놓는 게 많아 가방이 좀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어이쿠 이건 너무 빠르잖아. 무적다리가 된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무의식이 다리를 또 혹사시켰나 반성도 했다.
다시 풍경에 집중. 즐기자!! 이 구간은 많은 경우 조림지 안 임도를 걷는 길. 쭉쭉 뻗은 나무가 처음엔 신기하지만 계속 보니 지루했다가 많은 이들의 평이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지난 10년 부지런히 연구한 국가와 산업이 인도네시아의 임농업(원목사업, 조림, 팜플랜테이션)이었다. 지금은 거의 전업종에 한국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 1호의 목적지가 바로 이 나라, 이 산업이었다. 운좋게 인니의 한국계 맏형기업 K 그룹의 내부와 거의 대부분의 사업장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임도 사잇길을 오래 걸으며 칼리만탄과 파푸아에서의 봤던 거대한 조림지들이 자꾸 떠올랐다. 규모의 차이가 있으니 그리고 그곳은 더운 열대 나라이니 차량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지만, 조림지 안을 걷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는.
내가 아는 인니 K그룹의 나무꾼(이들은 스스로를 이리 부른다) or 조림 담당자들이 이 길 걸으면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년 인니 방문을 못 했는데, 올해는 가능할까? 연구자가 아니라 편한 마음의 방문자로 인니 한인사회의 아저씨들, 언니들을 만날 일정을 잡아봐야겠다. (항공권 마일리지를 함 체크해 봐야)
27일차의 목적지로 삼았던 라바콜라 도착하니 오후 4시다. 그런데 유일하게 문 연 시골호텔 까사후알의 숙박비도 예상보다 비싼 60유로. 헉 이건 아닌데...
4. 이렇게 된 이상 산티아고까지 간다
배낭 잠시 내려두고 발목을 슬슬 돌리고 스트레칭 좀 한 후 28km를 이미 걸어주신 다리님에게 공손하게 여쭤본다. "저기~ 시간이 좀 애매하잖아. 산티아고 성당 앞에 6시 반에는 들어갈 수 있겠는데. 어떻게 제가 더 가도 될까요?" 생각보다 발과 다리가 아프지는 않다. 뭐 그럼 허락받았다고 치고(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오늘 산티아고 들어가보자 발걸음을 다시 내딛어 본다.
그렇게그렇게 다시 걷기 시작해 20230127 중부유럽시간 18:37에 나는 산티아고 대성당 뒤로 석양이 뉘엿뉘엿 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시에 진입할 즈음엔 짧은 5분만에 사라졌으나 무지개의 환영도 다시 받았고. (무지개가 이리 흔한 기상현상인가 놀라웠는데. 이 계절 이 구간에서는 흔한일이랍니다 ^^)
이 광경을 보여주려 다리가 버텨줬구나, 머리로는 산티아고 대성당 포함 역사지구가 구릉의 서쪽 언덕이니 석양을 볼 수도 있겠구나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이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해 준 건 나의 발바닥이다.
대성당 뒤편 옛신학대학교를 리모델링한 숙소에 체킨하고, 숙소 안 레스토랑에서 메뉴델리아(오늘의 메뉴)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밤9시. 순례가 끝났다는 게 얼떨떨하고 실감도 잘 안난다. 내일 오전에 순례증명서 발급받고 12시 미사를 봐야 진짜 뭐가 느껴지겠지 싶은.
그래도 자축의 의미로 간만에 캔맥주 따마시며 오늘의 후기를 좀 적어보자 했는데, 맥주 두 모금 마신채 버려두고 10시간을 기절한 듯 쌔근쌔근 잠들었다는 ^^;;
이 주인놈이 이제 걷는 거 끝냈나보다. 정직한 몸이 먼저 알고 딥슬립으로 피로를 풀려나보다. 그래서 결론은? 나 엄청 행복하다고! 이틀 지났지만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슴다 ㅎㅎㅎ
Jinyoung Kwak 첫눈에 떡볶이인 줄
==> Jinyoung Kwak 나름 쉐프 파스타 ㅋㅋㅋㅋ
Jongmi Kim 아 올리브 오일에 소금 후추 살짝 뿌려 찍어먹는 빵의 맛은!! 캬~~ ㅎㅎ
===> 적절한 소금은 맛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ㅎ
김용운 산티아고 성당 순례자 위한 미사...때 향 치는 모습도 보시길요...덕분에 저도 몇해전 걸었던 길을 다시 마음으로나마 다시 걸었습니다. 무사귀국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김영옥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앉아서 스페인여행 잘 했습니다. 건강하게 귀국하시길요.
황규철 고생많었어요
Seon Hwa Lee 완주 축하드려요!!
JaeGweon Jung 대단합니다. 부럽네요. 완주 축하드립니다~
이명주 와~
이영수 드뎌~~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짝짝짝~~~^^
김익배 고지가 보이시는군요. 그럴수록 조심하시고 안전하게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엄박 화이팅
Jonghyo Thomas Ha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Jay H. Sean 고생 많았습니다.
오병길 와 대단하다~ 축하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