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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29) : 28+1일차

이제 돌아가는 중 (땅의 끝, Fisterra 0km)

1. 땅의 끝, 바다의 시작(28+1일)


내륙 출신(충북)이라 그런지 나는 바다가 참 좋다. 그래서 이번 여정의 마무리로 일요일 스페인의 대서양변 땅끝마을 Fisterra에 다녀오는 길이다. (27일차 일기는 피스테라 가는 길에, 지금 이글은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쓰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도 본연의 종교적 의미를 넝어 관광적 요소가 점점 추가되는 중이다. 물론 피스떼라에는 야곱의 시신이 처음 당도한 곳이라는 신화적(? 성경의) 의의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산티아고대성당에서 이곳 피스테라 혹은 좀더 북쪽 묵시하라는 곳까지 순례 트레일이 연장되어 있기도 하다. 4일~일주일 더 잡고 그 곳까지 등짐 지고 걸어가는 순례객들도 꽤 있는 편이기도 하고.


순례길 0km 기념석이 서 있고, 망망대해 대서양이 펼쳐지는 그곳. 갈리시아의 땅끝. 시즌엔 피스테라와 묵시하를 하루에 돌아주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지금은 비수기. 2시간 반이 걸리는(왕복 5시간) 완행버스를 타고 땅의 끝, 대양의 시작점 그 곳에 다녀왔다.


절반 정도 지난 후부터 버스는 구불구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어떤 곳은 동해안 같고, 어떤 곳은 제주 같고, 황량한 산과 바다가 맞닿은 지정은 또 이국적인(스페 인스러운) 바다 경관이 내내 펼쳐진다. 


피스테라에서 땅끝 표지석과 등대가 있는 파호까지는 3.5km 정도 더 걸어야한다. 매일 등짐 지고 20km 넝게 걷던 우리에겐 그냥 산책길. K선생은 본인 걸었던 날 중 가장 좋은 날이라고. 그렇게 40분을 걸어가 그 바다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왔다.


2. 이제부터는 돌아가는 중


이제 진짜 이 여행이 끝나는구나. 대성당의 미사가 끝일 줄 알았는데, 나에겐 오늘 이 바다를 본 것이 진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땅이 끝나는 지점이고, 이제 내 두 발이 내딛을 수 있는 지점은 방향을 틀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남아있다. 


시간의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지금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중이고, 내일 파리로 돌아갈 것이고, 모레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제법 긴 비행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석달은 내 인생에서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많은 이들이 지난 20년의 나의 삶에 대한 보상이라 말해 주었다. 혼자 누린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잘 살께요 다짐했더니, 그간 당신 참 열심히 살아냈소 앞으로는 자신도 돌보고 즐기면서 살라는 응원의 말이 쌓여 있다. 


한국이란 시공간에서 가장 멀리 오래 떨어져 있는 중인데, sns를 통해 그 어느 시기보다 더 많은 한국의 지인들과 다양한 방식의 환대와 응원의 소통을 나눈 기분이다.  


석양을 뒤로하고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 세계로의 귀환을 진심으로 시작하는 중이다. 사회도, 관계도, 앞으로의 경제활동도, 미래전망도 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내가 떠나왔던 그 곳으로 나는 돌아가고 있다. 


끝에 다달아서 발견하는 건 전혀 새로운 딴세상이 아니다.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다. 약속된 미래는 없어. 내 자리와 내 역할과 내 미래는  그곳에서 다시 찾아봐야해. 순례의 끝에서 내가 이 길을 시작할 때 품었던 어떤 기대의 문구를 다시 떠올려본다. 


'다시 시작할 의지가 생겨나기를'


오늘 바다를 보며 


바다를 등지고 다시 땅 위의 발걸음을 내디딛며


그 의지의 그림자를 설풋하게 본 듯하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러니 된 것이다.


오늘은 이런 날, 어딘가에 이르른 날!




박명기 대서양 앞에서 끝아닌 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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