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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2) : 순례2일차

다시 없을 듯 행복한 순례길의 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  23km)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zubiri)까지 23km 구간.

중간에 2~3곳의 고개가 있지안 대체로 무난한 내리막길 구간.

날씨는 흐리고 오전엔 안갯속에 간간히 비도 제법 내렸지만 낮기온은 15도 안팎 바람도 없어 오히려 땀 식혀 주는 비가 반가웠습니다.


문제는 어제 그리 공언했음에도... 등고선 지도 확인하니 뭘 이리 뱅뱅 돌리나, 이 산 넘으면 곰방 가겠고만. 지리학자 감과 배짱으로 사유지 목장 철조망 넝어 가며 산을 가로지르려 했는데... 


산 꼭대기 안개는 비로 바뀌고 구글 지도는 방위도 현위치까지 못잡고 헤매대요. 산 속에서 자칫 미아될 뻔하다 급 반성하며 올라온 길 되짚어 순례자의 길로 컴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한 시간 산 속에서 허비. 5시간 거리 너끈히 일찍 도착해 2일차 표준코스보다 한 두 마을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자만한 탓에 #섯부른_시간낭비를_반성해 봅니다. ㅠㅠ


산티아고 길 생긴 이래로 수십년 수백년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을 #표준코스의_이유, 특히나 날씨 예측 어려운 겨울시즌에는 왜 그걸 따르는게 맞는지 반성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는 딴맘 먹지 말고 순례자의 길 표식 잘 따르자 다짐 또 다짐. 


그래서 오후시간 부턴 부러 여유를 가져봤습니다. 지나는 길 마을마다 성당 앞이나 공터 앞에 부러 가방 부려놓고 물 마시고, 간식 챙겨먹고, 동네 꼬마들, 동네고양이 아는 척도 하고. 홀로 걷는 산길에서는 부러 음악도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춤사위를 펼치기도 하고. 행성적으로는 우려스러우나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에겐 축복인 이처럼 #춥지_않은_겨울_순례길의_여유와_한가함을 맘껏 누려보네요.


2일차 목적지 수비리. 웹상에선 두 곳의 알베르게가 문을 연 걸로 되어있는데, 실제로 문 연 곳은 한 곳 뿐. 어제 론세스바예스의 8명의 순례객이 모두 다시 모였습니다. 


오늘의 즐거움을 더해준 #새로운_만남 도 있었어요. 수비리 숙소는 우리 8명 외 십여명의 게스트 그룹가 더해짐. 순례길은 반대방향 팜플로냐(3일차의 목적지) 성당의 보좌신부와 대여섯명의 #대학생_주일학교_교사 와 중고등학생 열 명 정도가 새해맞이 순례를 하고 있네요. 팜플로냐에서 오늘 출발한 그들과 론세스바예스에서 출발한 우리가 이곳 수비리에서 딱 조우한거죠.  K팝과 한드 덕분에 남한을 "beautiful country"로 알고 있는 스페인 청(소)년들 덕에 괜히 어깨는 으쓱 한참 동안 얘기를 이어 갔습니다.


막판엔 주일학교 교사 청년들과 즐겁게 맥주나누며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까지. 대장교사 알렉스는 자기 동네 팜플로냐 진짜 좋다며 다이어리 한 장 찢어 팜플로냐에서 꼭 가야 할 곳, 꼭 먹어야 할 것 "#to_do_list_in_Pamplona" 한 장 가득 적어 주었어요. 


여기 다 가려면 내일은 걷는 순례길 접고 버스타고 팜플로냐로 나가 도시투어른 해야하나 싶은 밤입니다. ^^


7kg 배낭 메고 빗길 내리막 내려와 발통증은 어마무시하지만 뭐 이런 건 곧 익숙해지겠지요. 내일은 또 얼마나 신나고 재미난 일이 펼쳐질까요? 다시없을 만큼 행복하고 마지막까지 크게 웃은 2일차 순례의 밤을 이렇게 마무리해 봅니다!


어쩌면 각인된 나의 세례명도 로사~ (출발의 순간)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론세스바예스 성당
흐렸지만 춥지 않았고, 비가 내렸지만 땀 식힐 정도로 적당했응.
비스까렛 마을의 개냥이. 순례객들을 마을 끝 순례길까지 배웅해 줌.
사랑꾼 순례객이 남긴 흔적 혹은 응원메시지 (Army의 흔적)
도착의 순간— Albergue RIO ARGA IBAIA
알렉스가 적어준 팜플로냐 to do list
팜플로냐 성당 주일학교 샘들. 01년생 대학생들 (오른쪽이 알렉스)
순례 2일차. 알베르게 어른들의 뒤풀이

=========<댓글>========================

김시아 무거운 베낭메고 완전 고행이네요. 그래도 얼굴 밝으니 보기 좋아요. 서울 응암동 골목길에서도 티맵이 헤매더군요. 늘 오류와 실수는 있어요. 경험자들의 말씀을 잘 들으세요^^

=> 그니까. 매일 하나씩 반성꺼리가 생기고 있어요. ㅋ

김태완  응원합니다!!!

전미영 좋은 도시에서는 2-3일 머무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가방은 꼭꼭 가볍게요!!

 => 겨울엔 동키서비스 없고, 침낭(동계용 1500g) 필수라 가방무게 더하면 더 가볍기는 어려워요. 혼자 나선길이면 그걸 감당할 체력을 기르거나 동료찾기를 추천!

김창범 하루하루 소식 전해주시니 동행하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 ㅋㅋ 무리하지 마시고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순례의 길'의 뜻을 찾아가기 바래요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 새해 첫 도전 멀리 서울에서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대사님 새해 계획 구체적으로 잡히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Sunhwa Kim 살이 쏙 빠지겠군 이러다가 밤에 맥주를 보니 그 생각이 싹~~~ ㅋㅋ

이깨비 다짐한대로 꼭~~ 무리하지 마시고요~~ 셋째날도 응원합니다 ~~

Jeoun Soon Lee 저도 함께 순례여행하는 듯... 꼼꼼하게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깊이있게 여행 잘 마치시길요.

Hyunjung Chae 선생님 너무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순례/여행 마치고 오시고요. (순례길 책 출판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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