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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휘 May 22. 2023

맛있어져라, 계란찜

계란찜


우연찮게 찜기가 하나 생겼다. 크기와 무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뚜껑이 마음에 들어서 사양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집안일에 밀려 한동안 현관에 방치했다.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했다. 찜기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냈나?


집 안에 물건을 들이는 일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디자인이 1순위이지만, 실용성은 그에 버금가는 요소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으로는 비슷한 물건이 있는지, 얼마나 자주 사용할지, 사용할 때 불편하지는 않을지, 한 번 들이면 후회 없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주방용품이 그렇다.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디자인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실용성이 떨어지면 결국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에 계란찜을 하려는데 문득 이 찜기가 생각났다. 상자에 있던 냄비를 꺼내 세척을 하고 계란찜을 안쳤다.




1. 계란 5알에 소금 한 꼬집을 넣어서 잘 풀어준다.

2. 끓는 물 한 컵 정도에 코인 육수 2알을 넣어 녹여준다.

3. 내열유리 용기에 1과 2를 섞어서 찜기에 넣고 익혀준다.


절로 익어가는 계란찜을 보다가 나는 알게 되었다. 전자레인지나 뚝배기보다 찜기에 하는 계란찜이 훨씬 더 쉽고 간단하다는 사실을. 계란물이 익기 시작하면 테두리가 하얗게 변한다. 그때 중간에 한 번 속까지 잘 익고 있는지 확인해 주고 불을 끈다. 시간은 약 20분 정도. 이제 부드럽게 잘 익은 계란찜을 맛볼 시간이다.


들기름 넣고 푹푹 끓여낸 열무김치찜에, 촉촉한 계란찜을 양껏 올린다. 시큼하면서 달큼한 김칫국물에 짭조름하고 고소한 계란찜이 밥알과 고루고루 섞인다. 거실에 싸늘히 깔려 있던 냉기가 밥 짓는 온기로 뒤덮이고, 나는 한 숟갈 한 숟갈에 집중하며 훌륭한 궁합을 지닌 이 맛을 한참 동안 음미한다. 계란찜을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이, 이제야 집에서도 언제든 맛있게 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순간이다.


새로운 살림을 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한 적당한 쓰임을 찾게 된 어느 화요일의 기록.

오늘 먹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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