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찜
우연찮게 찜기가 하나 생겼다. 크기와 무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뚜껑이 마음에 들어서 사양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집안일에 밀려 한동안 현관에 방치했다.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했다. 찜기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냈나?
집 안에 물건을 들이는 일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내 경우에는 디자인이 1순위이지만, 실용성은 그에 버금가는 요소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으로는 비슷한 물건이 있는지, 얼마나 자주 사용할지, 사용할 때 불편하지는 않을지, 한 번 들이면 후회 없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주방용품이 그렇다.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디자인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실용성이 떨어지면 결국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에 계란찜을 하려는데 문득 이 찜기가 생각났다. 상자에 있던 냄비를 꺼내 세척을 하고 계란찜을 안쳤다.
1. 계란 5알에 소금 한 꼬집을 넣어서 잘 풀어준다.
2. 끓는 물 한 컵 정도에 코인 육수 2알을 넣어 녹여준다.
3. 내열유리 용기에 1과 2를 섞어서 찜기에 넣고 익혀준다.
절로 익어가는 계란찜을 보다가 나는 알게 되었다. 전자레인지나 뚝배기보다 찜기에 하는 계란찜이 훨씬 더 쉽고 간단하다는 사실을. 계란물이 익기 시작하면 테두리가 하얗게 변한다. 그때 중간에 한 번 속까지 잘 익고 있는지 확인해 주고 불을 끈다. 시간은 약 20분 정도. 이제 부드럽게 잘 익은 계란찜을 맛볼 시간이다.
들기름 넣고 푹푹 끓여낸 열무김치찜에, 촉촉한 계란찜을 양껏 올린다. 시큼하면서 달큼한 김칫국물에 짭조름하고 고소한 계란찜이 밥알과 고루고루 섞인다. 거실에 싸늘히 깔려 있던 냉기가 밥 짓는 온기로 뒤덮이고, 나는 한 숟갈 한 숟갈에 집중하며 훌륭한 궁합을 지닌 이 맛을 한참 동안 음미한다. 계란찜을 정말 좋아하는 한 사람이, 이제야 집에서도 언제든 맛있게 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순간이다.
새로운 살림을 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한 적당한 쓰임을 찾게 된 어느 화요일의 기록.
오늘 먹은 밥이 더 맛있게 느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